아파트를 사지 말고 이웃을 사라

조인스랜드

입력

업데이트

[한진기자]

며칠 전 필자는 서울시 아파트 커뮤니티 활성화 단지로 선정된 동작구의 한 아파트 옥상텃밭 취재를 다녀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19년 만에 서울에서 4월에 눈이 내린 날이었다. 우산이 뒤집히고 신발이 흠뻑 젖을 정도로 눈이 섞인 비바람이 세찼지만 입주민들은 마냥 들뜬 모습이었다. 이 날은 아파트 관리동에 조성된 옥상텃밭에 씨앗을 뿌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옥상텃밭 취재를 마치고 몇몇 입주민들과 부녀회장에게 필자가 넌지시 물었다.

“옥상텃밭 가꾸면서 주민들 반응도 좋고 이웃 단지에 소문도 많이 났다던데… 혹시 이것 때문에 집값도 좀 올랐나요?”

아파트값을 올리려고 부녀회가 단지 인근 중개업소와 짜기도 한다는 마당에 으레 집값이 올랐다는 허울 좋은 답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필자의 생각은 오산이었다.

“‘아파트를 사지 말고, 이웃을 사라’라는 말도 있잖아요. 삶의 질이 달라졌는걸요. 아파트 값에 비할게 아니죠”

이 대답을 듣고 잠시 말문이 막혔다.

부녀회장을 비롯해 함께 있었던 이웃들이 이구동성으로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소중한 이웃을 얻었다”면서 필자의 질문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필자 역시 아는 이웃이라고는 오다가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옆집 가족들이 전부인 것 같다.

가끔 마주쳐서 알고 지낸다고 생각했다가도 간만에 보면 얼굴을 몰라보기 일쑤다. 어쩌다 같은 층의 옆집 아저씨와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게 될 때면 필자를 몰라본 그 아저씨가 층 버튼을 대신 눌러줄 생각으로 몇 층에 사느냐고 묻기도 한다.

몇 번이나 인사를 나눴는데 못 알아보나 싶어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만큼 교류가 부족했던 탓이리라.

이웃간 교류할 수 있는 커뮤니티시설ㆍ프로그램 부족

요즘 분양하는 새 아파트들은 골프연습장을 갖춘 휘트니스센터, 도서관, 어린이집, 카페테리아 등 으리으리한 커뮤니티시설을 자랑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단지에서는 입주민 간 교류하고 회의ㆍ교육 등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편이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 따르면 주민공동시설은 대부분 300가구 이상의 대규모 단지에만 설치하게 돼 있으나 서울시의 공동주택단지 가운데 65%(거주가구 중 20%)가 300가구 미만의 소규모 단지여서 주민공동시설이 부족한 실정이다.

실제로 이 날 옥상텃밭에 이어 뜨개질 모임과 기타교실 주민들이 취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단지 내 커뮤니티 공간이 협소하다 보니 일부 주민들은 앉을 공간이 없어서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앞서 찾아간 공동육아 품앗이를 하고 있는 노원구의 한 단지에서도 노인정 한 켠의 비좁은 방이 어린 아이들의 배움터로 운영되고 있었다.

커뮤니티 프로그램의 부재도 문제다. 대부분의 단지에서 시행하고 있는 커뮤니티 프로그램은 취미강좌와 체육활동 등을 제외하면 일회성이거나 행사성 프로그램인 경우가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파트 입주민들이 커뮤니티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고 참여도도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2010년 실시한 ‘아파트 공동체 관련 주민 의견조사’에서는 아파트 입주민의 62%가 입주자대표회의 등 주민조직 활동에 참여한 적이 없고 세입자의 경우는 83%가 경험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공동체 활동 및 공동체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입주민의 67~77%는 입주민 간의 교류 확대 효과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서울시에서도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부터 각 자치구에 커뮤니티 전문가를 배치하고 커뮤니티 사업을 공모해 공동육아, 외국인과 함께하는 다문화 프로그램, 옥상텃밭 가꾸기 등 단지별 맞춤형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지원하고 있다.

물론 아파트 커뮤니티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입주민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가 가장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여기다 제도적인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이웃 간 교류가 활발해지고 그동안 잊고 살았던 공동체 문화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웃간 따스한 정이 넘치는 살기 좋은 아파트로 소문나면 자연스레 아파트 값이 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아파트값 올랐냐는 질문에 ‘아파트를 사지 말고, 이웃을 사라’고 답하면서 손수 만든 비누와 수세미를 건네주던 입주민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 동작구 노량진동 신동아리버파크 입주민 커뮤니티 모임

<저작권자(c)중앙일보조인스랜드. 무단전제-재배포금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