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기 경제 성적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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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기 중 우리 경제의 성적표는 '외화내빈(外華內貧)' 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9.2%라는 성장률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내용면에서 경기침체를 예감할 수 있는 요인들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우리 경제는 반도체 등 정보통신 관련업종의 수출호조에 힘입어 높은 성장률을 유지했으나 ▶품목별.업종별 불균형이 커지고▶내수 침체가 본격화하는 등 명암이 뚜렷이 갈렸다.

한국은행 정정호 경제통계국장은 "소비와 투자 등 내수가 얼어붙고 있는 것은 사실" 이라면서 "20%대 증가율을 나타내던 수출도 10월 이후엔 10%대로 증가율이 낮아져 4분기부터는 국내총생산(GDP)성장률 둔화가 불가피하다" 고 말했다.

◇ 실물과 따로 노는 경제성장률=이 기간 중 심화된 증시침체와 2차 금융.기업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이 내수를 급격히 위축시키고 있다.

특히 올해 1분기와 2분기 중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11.1%, 8.9%씩 성장했던 민간소비는 3분기 중 5.7% 성장에 그쳤다. 투자 쪽에서도 설비투자 증가세가 크게 둔화되고 건설투자는 감소세를 면치 못해 내수위축을 부추겼다.

수출이 홀로 우리 경제를 떠받치는 양상이나 주력 수출품목인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고 유가는 치솟는 등 교역조건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어 수출호조가 실물경기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그리 크지 않은 실정이다.

한국금융연구원 정한영 경제동향팀장은 "GDP성장률은 높지만 교역조건을 반영해 우리 국민이 실제 쓸 수 있는 소득을 나타내는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훨씬 적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고 꼬집었다.

실제로 지난 2분기 GDP성장률은 9.6%에 달한 반면 실질 GNI는 1.8%에 불과, 두 지표간의 격차가 90년 이후 최대치로 확대된 바 있다. 그만큼 성장률 지표와 국민의 체감경기 사이의 간격이 커지고 있는 셈이다.

◇ 경기 낙관 못해=4분기부터는 정보통신 부문의 수출도 둔화되면서 경기 하강국면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그나마 정부가 예정대로 기업.금융구조조정을 이행하지 못하면 경쟁력이나 대외신인도 약화로 경기침체가 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너무 늦기 전에 경기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도 늘고 있다.

오석태 씨티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이미 불황은 시작됐다" 면서 "구조조정의 성과를 점검하면서 정부가 감세(減稅)나 재정지출 확대 등의 대책을 세워야 내년에 6% 성장이 가능할 것" 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기진작만을 위한 재정지출 확대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조세연구원 현진권 박사는 "단기적인 성장률에 집착하지 말고 원칙대로 구조조정을 마무리해 안정성장의 토대를 만드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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