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풍력 전기 끌어와 서울·도쿄서 쓰자” 손정의 원대한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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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손정의 회장

칭기즈칸이 말 달렸던 몽골 고비사막의 벽촌인 살크히트 울(Salkhit Ull).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남쪽으로 70㎞ 떨어진 이 지역은 ‘바람의 산’이란 이름에 걸맞게 1년 내내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는 곳이다. 이 황량한 불모의 땅에 몇 년 전부터 거대한 바람개비를 닮은 풍력발전 터빈 수십여 개가 들어섰다. 거의 무한정한 바람을 전기로 바꿔 외국에 팔겠다는 몽골인들의 염원이 담긴 시설이다. 실제로 이렇게 만들어진 전기를 이웃인 중국은 물론 해저케이블을 통해 한국, 일본까지 끌어다 쓰겠다는 꿈을 쫓는 이가 있다.

일본의 빌 게이츠로 불리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다.

 “재생 가능 에너지는 비싸고 전력 수요에 비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손 회장은 지난달 10일 일본 도쿄 오다이바에서 열린 재생에너지 관련 ‘리비전(REvision) 2012’ 세미나에서 이렇게 역설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추진 중인 ‘아시아 수퍼그리드 (Asia Supergrid)’ 구상을 펼쳐 보였다. 고비사막을 시작으로 중국의 베이징·상하이, 한국의 서울, 그리고 일본의 도쿄를 파란 선으로 연결한 도면 앞에서였다. 이날 행사에는 유럽의 수퍼그리드 전문가와 함께 일본·중국·몽골·한국 관계자 등 100여 명이 모여 손 회장의 꿈을 경청했다.

 현재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수퍼그리드의 의미는 광활한 지역에 퍼져 있는 풍력·태양열·원자력 등 각종 발전시설과 여러 도시를 잇는 고압전력망을 지칭한다. 멀리 떨어진 여러 곳에서 전기를 만들어내면 날씨가 나빠지거나 바람이 잦아들면서 생산량이 확 줄어드는 재생 가능 에너지의 단점을 크게 보완할 수 있다. 소비 측면에서도 이점이 있다. 여러 국가에 고압전력망을 깔아 전기를 나눠 쓰면 시간대별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데 따른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전력 수요가 가장 많은 피크타임이 시차를 두고 발생해 공급이 부족한 나라에 전기를 몰아 줄 수 있는 것이다.

지난달 10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리비전(REvision) 2012’ 세미나에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가운데)이 아시아 주요 도시를 잇는 고압전력망인 ‘아시아 수퍼그리드’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손 회장 뒤에 보이는 것은 아시아 수퍼그리드 계획도. 수퍼그리드망이 인도의 델리부터 한국의 서울, 일본 도쿄까지 연결돼 있다. [사진 자연에너지재단]

 손 회장이 꿈꾸는 건 바람과 햇볕이 남아도는 몽골 사막에서 전기를 만들어 전력 사정이 나쁜 일본의 대도시에 공급하자는 계획이다. 몽골에 부는 바람을 모두 전력으로 바꿀 수 있다면 연간 8100TWh(테라와트·1조와트)가 된다. 일본의 연간 소비전력의 8배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다. 그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사재를 털어 ‘자연에너지재단’이란 단체까지 세웠다.

 손 회장은 아시아 수퍼그리드에 대해 “꿈처럼 들리겠지만 충분히 실현시킬 수 있는 계획”이라고 단언했다. 그가 이렇듯 장담하는 이유는 이 계획이 기술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게 이미 밝혀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유럽에선 오래전부터 바다 밑에 해저케이블을 깔아 전기를 주고받는 수퍼그리드망(網)이 가동돼 왔다”고 설명했다.

 손 회장이 이 계획에 각별한 관심을 두는 건 일본의 현 상황과 무관치 않다. 지난해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사회는 원전을 거부하며 새로운 재생 가능 에너지 개발에 전념하고 있다. 이런 터라 일본에선 몽골에서 무공해 에너지를 들여오자는 구상이 어느 때보다 매력적으로 들리는 것이다.

 물론 이 꿈이 실현되려면 숱한 난관을 뚫어야 한다. 일본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중국과 한국을 통해 전기를 들여와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혹시 이들과 다투게 되면 이들 나라에서 전기를 끊을 수도 있다는 거다.

 그러나 수퍼그리드 지지자는 중국과 한국을 통하는 라인 외에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본 홋카이도를 연결하는 다른 전력망을 확보함으로써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부 전문가는 과학적 이유를 들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한국의 한 외교관은 “고압전력망을 이용한다고 해도 워낙 먼 거리를 이동하다 보면 막대한 전력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이 계획이 지닌 막대한 매력 덕에 갈수록 많은 이들이 관심을 쏟고 있다”고 한 소프트뱅크 관계자는 밝혔다.

특별취재팀=남정호 순회특파원
한우덕·전수진 기자

노르웨이~ 네덜란드 580㎞ 해저케이블

유럽선 수퍼그리드 상용화

수퍼그리드망에 사용되는 실제 크기의 고압전력용 케이블 단면.

수퍼그리드의 개념이 출현한 것은 193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 정부는 미국 북서부의 태평양 연안에서 생산한 전력을 남캘리포니아까지 끌어온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회의론자들의 반대에 부닥쳐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다 60년대에 접어들자 당시 케네디 대통령이 수퍼그리드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이를 실현시켰다.

 현재 일반적으로 쓰이는 수퍼그리드의 의미는 대륙 규모의 광활한 지역에 고압전력망을 깔아 수력·풍력·태양광·조력 등 재생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생산·관리하는 것을 지칭한다. 이런 개념의 수퍼그리드 사업은 최근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돼 왔다. 예컨대 2008년부터 노르웨이와 네덜란드 간 580㎞를 해저케이블로 이은 ‘노르네드(NorNed)’, 2007년 이래 핀란드와 에스토니아 사이 105㎞를 연결한 ‘이스트링크(Eastlink)’ 등이 대표적이다. 눈부신 과학의 발달로 지름 20cm 안팎의 해저케이블 한 쌍을 이용해 이들 국가 간의 전력 수급을 소화해 내고 있다.

 한편 소프트뱅크와 손잡은 유럽의 ‘데서테크(Desertec) 재단’은 햇볕이 풍부한 북아프리카 사막과 바람이 거센 북유럽 지역을 고압전력망으로 연결해 유럽 전역에 재생가능 에너지를 공급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추진 중이다.

협찬 : 원아시아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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