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 어디 없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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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한국가스공사는 지난해 말 가스설비 교대근무자로 일할 신입사원 30명을 공모했다. 지원 자격은 ‘고교 졸업 이상’이었다. 인사 담당자는 “최종 학력을 고졸로 명시하면 학력 차별 논란이 있을 것 같아 ‘고졸 이상’으로 표시했지만 원래 고졸자 채용이 목표였다”고 말했다. 실제 처우도 대졸 공채(5급)와 달리 고졸 수준(7급)이었다. 그러나 올 1월 채용 결과, 순수 고졸은 3명뿐이었고 나머지 27명은 모두 대졸자였다. 인사 담당자는 “고졸 지원자가 부족했다”며 “반면 고졸 자리에 하향 지원한 대졸자는 많아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취업시장의 학력과 일자리 불균형 현상이 심각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고용노동부가 3일 발표한 ‘2011~2020년 중장기 인력수급 전망’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고졸은 32만 명이 부족한 반면 전문대졸 이상은 50만 명 이상 남아돌 것으로 예상됐다. 대졸자는 구직난, 기업은 고졸자 구인난에 시달리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될 것이란 의미다. 정부가 2년마다 내놓는 중장기 인력수급 전망에 고졸자를 포함시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르면 10년간 학력별 경제활동인구는 중졸 이하는 대폭(215만 명) 줄고, 고졸은 소폭(82만7000명), 전문대졸 이상은 대폭(371만 명)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노동시장에 신규 공급되는 인력은 전문대졸 이상이 466만여 명이다. 전문대졸이 145만 명, 대졸과 대학원졸이 각각 233만 명, 88만 명이었다. 고용부는 전문대졸 이상의 신규 공급 인력이 시장 수요를 50만 명 이상 초과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고졸자는 99만여 명이 필요하지만 공급은 67만여 명에 그쳐 인력난을 겪을 전망이다.

 한국고용정보원 권우현 박사는 “고교생의 80% 가까이가 대학에 진학하는 ‘학력 인플레’ 현실을 반영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고용부는 “앞으로 대학구조 개혁, 열린 고용 분위기 확산을 통해 학력 과잉 투자를 막겠다”고 밝혔다.

 인력수급 전망은 경제활동인구조사(통계청), 교육고용패널조사(교육과학기술부)와 고졸자취업경로조사(한국고용정보원)를 종합해 나온 것이다. 이 중 고졸자취업경로조사는 지난해 처음 이뤄졌다.

 그러나 이번 전망치를 두고 ‘고졸자 취업문이 넓다’는 식으로 단순 해석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스공사 사례처럼 구직난을 겪는 대졸자들이 고졸자 일자리로 ‘하향 취업’하는 현실이 전망치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고졸자들이 낮은 임금 등을 이유로 일자리가 있어도 취업을 하지 않는 인력 수요·공급의 ‘미스매치’가 계속될 것이란 견해도 적지 않다.

김한별·이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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