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293억 쏟아붓고 … 주미대사관 투표 온종일 81명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박승희
워싱턴 특파원
28일 오후 3시30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근교의 버지니아주 비엔나시에 위치한 한국과학협력센터 건물 3층. 주미대사관 관할 재외국민투표소는 지루할 만큼 한산했다.

 오전에는 그래도 꽤 사람이 찾았는데 오후 들어 한 시간여 동안 투표하러 온 사람은 두 명뿐이었다. 재외국민 선거 첫날 이곳의 투표자 수는 모두 81명이었다. 대상 유권자 6만1705명 중 3.26%인 2104명만이 등록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정태희 선거관은 “e-메일 두 차례, 우편물 통보, 신문 광고 등 홍보를 해왔다”며 “지하철역에서 이곳까지 셔틀버스도 운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40년 만에 부활된 재외국민 선거가 ‘투표하는 재외국민의 편의’보다 ‘선거 관리의 공정성’만 앞세운 결과는 참담했다.

 주미대사관 투표소는 버지니아주·웨스트버지니아주·메릴랜드주·워싱턴 DC의 4개 지역을 관리한다. 남한 면적의 두 배 넓이다. 그나마 이곳은 낫다. 시카고 총영사관의 경우 일리노이주·미시간주 등 관리하는 지역이 13개 주로 남한 전체 면적의 무려 20배다. 라스베이거스에 사는 사람이 투표하려면 자동차로 왕복 10시간을 들여 LA 총영사관까지 가야 한다. 그것도 등록할 때와 투표할 때 두 번이나 품을 들여야 한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전체 유권자 223만 명 중 투표를 하겠다고 등록한 사람은 12만3571명으로 5.5%에 불과하다. 선관위 측은 재외국민 선거 등록자 중 60%를 목표 투표율로 내걸었다. 목표를 달성하면 7만4000여 명으로 전체 유권자의 3.3%다.

 벌써부터 돈 낭비를 걱정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재외국민선거에 투입된 예산은 293억원. 2009년 재외국민선거법을 통과시킬 때만 해도 정치권은 의욕이 넘쳤다. 현역 의원으로 담당팀을 꾸리고 미국·유럽 등을 돌며 해외조직을 챙겼다. 하지만 이날 투표소에 정당 참관인 2명을 배치한 정당은 아무도 없었다. 재외국민 몫 비례대표 상위 순번을 배치한 정당도 없다. 투표율이 너무 낮아 ‘표’가 안 되니 일찌감치 포기한 결과다.

 정 선거관은 “예산이 들어도 재외국민선거 자체가 갖는 의미를 평가절하할 순 없다”며 “가까운 지역에 추가 투표소를 설치하는 것과 우편등록 허용 등 제도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투표소에서 한 시간 거리인 메릴랜드에서 왔다는 구문장(68)씨는 “이렇게 한 표를 행사하게 돼 감개가 무량하다”며 “TV를 틀어도 한국 방송을 보고 한국을 잊지 않고 사는 게 영주권자들인데, 우리를 덤으로 취급하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중앙일보 총선홈 지역구별 후보자 상세정보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