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한파 얼어붙은 서민가계

중앙일보

입력

불황 한파로 서민가계가 꽁꽁 얼어붙고 있다. 전반적인 경제난 속에 기업 퇴출.대우차 부도 등이 겹쳐 실업불안까지 확산되면서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

중산층의 씀씀이가 눈에 띄게 줄고 있으며 저소득층은 기본 생활에 위협을 느끼는등 IMF 사태이후 최악의 상태다.

지난 10일 오후 8시쯤 서울 종로구 J갈비집. 한두달 전만 해도 이 시간이면 50여개의 자리가 꽉 찼으나 이날 손님이라곤 겨우 10여명.

주인 崔모(35.여)씨는 "최근 직장인 회식과 가족모임이 눈에 띄게 줄어 장사가 안된다" 고 말했다.

사정은 가볍게 한잔 하는 포장마차에서부터 기업체의 접대장소인 고급음식점.유흥음식점까지 크게 다르지 않다. 매상이 지난해 이맘때쯤보다 30% 이상 감소했다.

부산시 중구 중앙동 음식점 골목의 10여개 업소는 불황을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주부들의 소비행태도 마찬가지다. 재래시장.백화점.할인점들도 매출이 20~30%씩 감소했다.

식료품만 그런대로 현상을 유지할뿐 가전.귀금속.고급 의류 등은 안팔린다. 부산 국제시장의 의류상 黃모(36)씨는 "하루 매상이 얼마인지 말하기조차 부끄럽다" 며 "월세를 감당하기 힘들 정도" 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대형업소에는 감원바람이 불고 있으며 문을 닫는 소형점포들도 늘고 있다.

최근 점원 30명을 줄인 대구 A할인점은 30명 추가 감원을 계획하고 있다. 서민가계의 불안감은 먹고 입는 것을 아끼는 것 만이 아니고 교통수단.보험.자녀 교육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인천시 계양구 J미술학원의 경우 올 상반기 1백여명을 넘었던 미취학아동과 초등생 수강생이 한달새 50여명이나 줄었다.

학부모 李모(34)씨는 "트럭운전을 하는 남편의 벌이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월 6만원인 아들 학원비를 아끼기로 했다" 고 말했다.

승용차나 택시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주유소 매출도 10~20% 줄고 택시승강장에는 한동안 사라졌던 빈 택시 행렬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일부 저소득층은 가계에 위협을 받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다.

전북 전주시 평화동 주공아파트 2단지(15~17평형)에 사는 金모(45.여)씨는 며칠째 전기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金씨가 다니던 속옷 생산업체가 지난 7월 부도가 나면서 실직, 석달째 관리비(한달 4만원)를 못내 관리소측이 단전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1천3백여가구가 사는 이 단지에는 관리비를 체납해 전기가 끊긴 가정이 매달 30~40가구씩 생기고 있다.

6백60가구가 사는 전주시 인후동 13평짜리 인후아파트 단지에는 월 1만5천원인 관리비를 체납한 집이 1백50여가구에 이른다.

세금을 못내는 가정도 속출해 올들어 지난 6월 말까지 지방세 체납액은 9천4백81억원에 이른다.

이는 지난해 1년 동안의 체납액(9천7백33억원)과 맞먹는 액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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