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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편 지지자 전화 못 받게 훼방…지역언론과 짜고 결과 조작 의혹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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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선거철 여론조사의 위력은 막강하다. 각 당의 공천 심사 때 핵심 자료로 활용될 뿐 아니라 여론조사 경선에선 공천자를 직접 결정하는 잣대가 된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의 사퇴를 불러온 서울 관악을의 여론조사 조작 파동처럼 민심을 반영하는 거울이어야 할 여론조사가 거꾸로 ‘여론’을 조작하는 도구로 악용되는 경우도 밑바닥에는 적지 않다.

 충청권에 출마한 한 A후보는 최근 캠프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와 지역 신문에 실리는 여론조사의 차이가 커 곤경에 처했다. 자체 조사에선 경쟁자인 B후보에게 9%포인트 정도 뒤져 해볼 만하다는 판단이었지만, 비슷한 시기에 지역 신문에 나온 조사에선 20%포인트 이상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A후보 측이 내막을 알아보니 B후보 측이 지역 신문과 여론조사 기관 등에 손을 써 결과를 손질한다는 것이다. A후보는 26일 “B후보가 지역에 뿌리가 깊기 때문에 여론조사를 ‘마사지’한다고 하더라”며 “모처에서 우리한테도 ‘돈을 좀 쓰면 유리한 조사 결과를 내보낼 수 있다’는 제안이 들어왔으나 ‘그렇게는 못한다’고 거절해왔다”고 말했다. 현재 해당 지역 선관위는 A후보 측이 여론조사 조작설을 제기하면서 사실 관계 파악에 들어갔다. 이에 대해 B후보 측은 “말도 안 되는 음해”라고 반박했다.

 이곳뿐이 아니다. 경기 여주-양평-가평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에 패배한 민주통합당 조민행 후보 측은 지난 21일 “통합진보당 이병은 후보 측이 나이를 속여 여론조사에 응답할 것을 유도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며 관련 증거를 공개했다. 조 후보 측이 공개한 문자메시지엔 ‘통합진보당 이병은을 지지하시는 분들은 이 시간 이후 여론조사 전화가 오면 20~49세 연령대로 체크해주시길 바랍니다. 다른 연령대는 모두 마무리된 거 같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이정희 후보와 똑같은 케이스였으나 ‘야권 연대’를 깨면 안 된다는 정치적 필요성 때문에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새누리당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불거졌다. 경북 문경-예천 이한성 후보는 중앙당에서 공천 관련 여론조사가 한창이던 지난달 28일 지역의 일부 주민에게 ‘여론조사가 진행 중입니다. 연령을 30, 40대라고 대답하고 응해주시기 바랍니다’란 문자 메시지를 발송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의원 측은 “농촌지역 특성상 젊은 층 여론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 같아 이를 홍보하려다 빚어진 실수”라고 해명했다.

대구 수성을 주호영 후보 측도 지난달 23일 선거사무실에서 50~70대 유권자 60여 명을 모아놓고 “현역의원 하위 25%를 걸러내기 위한 ‘컷오프’ 여론조사 전화가 걸려올 경우 20~30대로 답변하라”고 권유했다. 당시 그 자리에 참석했던 유권자가 녹취 파일을 공개해 이런 사실이 드러났으나 주 후보 측은 “즉흥적인 아이디어로 얘기한 것일 뿐 조직적으로 움직인 것은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새누리당의 경우 여론조사 경선이 아니었기 때문에 큰 문제로 번지진 않았으나 ‘여론 조작’을 시도했다는 측면에선 이정희 후보와 다를 게 없다.

 나이를 속이는 것은 초보적 수법에 속한다. 2010년 지방선거 때 민주당 광주시장 경선에선 강운태 후보 측이 자동응답시스템(ARS)을 이용, 경쟁 후보를 지지하는 당원들은 전화가 계속 통화 중이 되도록 해서 여론조사 전화를 못 받게 하는 수법을 구사했다가 적발된 적이 있다. 지난해 민주당 완주군수 후보 경선에선 한 후보 측이 지역에서 사용하지 않는 일반전화 회선(휴면회선) 2000여 대를 싹쓸이한 뒤 조직원들의 휴대전화 수십 개에 착신 전환해 놨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여론조사가 선거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만큼 특정후보에게 여론조사가 유리하도록 왜곡하는 행위에 대해선 감시활동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리서치앤리서치의 배종찬 본부장은 “여론조사는 여러 가지 한계가 있는 도구인데 정치권이 편의주의적으로 경선에 활용하다 보니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특히 ARS로 경선을 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여론조사 조작 유형

① 당원을 일반 선거인단으로 둔갑시켜 여론조사 참여시켜
② 50~70대 유권자에게 20~30대라고 응답하라고 권유
③ 조사가 실시되는 시간에 상대 후보 지지자들에게 다른 여론조사 실시해 응답 방해
④ 과거 전화번호부를 기준으로 조사해 타 지역구 주민을 여론조사 대상에 포함
⑤ 지역 군소 언론과 거래해 제목을 유리하게 뽑게 한 뒤 선거 유세에 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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