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63) 부동산 대못, 종합부동산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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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2004년 8월 11일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 노무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부동산 대책을 재정경제부가 맡아 달라”고 주문한다. 그때까지 부동산 정책을 총괄해 왔던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은 원안보다 크게 완화된 재경부 안과 이헌재 재경부 장관에 대해 공개석상에서 비난했다. 다음날인 12일 연세대에서 열린 한국경제학회 학술회의에 참석한 이헌재 장관(왼쪽)과 이정우 기획위원장은 이후 자신들이 벌이게 될 날 선 논쟁의 운명을 예감하고 있었을까. [중앙포토]

밥 짓는 건 생각보다 기술이 필요하다. 한번 솥에 안쳤으면 끓을 때까진 뚜껑을 열면 안 된다. 끓어도 끝이 아니다. 노릇노릇 타는 냄새가 나도 기다려야 한다. 이때를 못 참아 뚜껑을 열면 밥이 설익는다. 안 익었다고 불을 더 때면 밥이 탄다. 뜸 들이기가 중요한 이유다. 정책도 비슷하다. 뜸 들이기가 필요하다. 쓰자 마자 효과가 나는 정책은 거의 없다. 처음엔 효과는 없고 비용만 계속 든다. 이때 뜸을 들여야 하는데 못 참고 강도를 더 높이기 십상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나. 약발이 나중에 한꺼번에 듣는다. 과열·부작용이 나는 것이다. 이른바 J커브다. 아무 변화 없이 죽 가다가 어느 시점엔 확 꺾어지는 현상.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이 그랬다. 느긋하게 정책 효과를 기다리지 못했다. 계속 “효과가 없다. 더 세게 가자”고 밀어붙였다. 부동산 대못으로 불린 종합부동산세. 나는 이걸 좀 천천히 뜸 들이며 가자고 했지만 청와대의 생각은 달랐다.

 내가 본격적으로 부동산 대책에 간여하게 된 건 2004년 8월 11일부터다. 이날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 노무현 대통령은 “정책기획위원회가 맡던 부동산 대책은 국민경제자문회의로 넘기고, 경제부총리가 각 부처를 총괄 조정해달라”고 말한다. 그때까지 부동산 정책은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이 총괄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재정경제부에서 부동산 대책을 맡아 주셔야겠습니다. 보유세 올리는 게 전혀 진전이 없습니다. 세제는 본래 재경부 몫이잖습니까.”

 보유세 인상. 대신 거래세는 낮춘다 . 이미 내가 참여정부에 들어오기 전 결정이 나 있었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과도 합의가 돼 있었다.

 당장 부동산 대책회의가 국민경제자문회의 아래 설치됐다. 9월 정기국회까지 종부세 틀을 짜기로 했다. 부동산은 참여정부의 최대 골칫거리 중 하나였다. 2000년 초 불기 시작한 부동산 투기 바람은 2002년 절정에 달했다. 하룻밤 자고 나면 집값이 몇천만원씩 뛴다는 소리까지 나왔다. 급기야 2003년 10월 29일, 참여정부는 초강수를 둔다. 이른바 10·29 대책. 종합토지세와 주택에 대한 재산세 강화, 주택거래 신고제 도입, 주상복합 아파트 분양권 전매 금지 등 거래 관련 전방위 규제를 마련했다. 재건축 아파트 개발이익 환수제, 보유세 과세표준 인상, 1가구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주택담보 인정비율(LTV) 하향, 총부채상환비율(DTI) 도입 등도 예고됐다. 그야말로 쏟아낼 수 있는 대책은 다 쏟아냈다. 시장엔 벌써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었다. 거래는 급격히 줄고, 집값도 떨어졌다. 그러나 강남 아파트는 예외였다. 전국 집값이 떨어졌지만, 강남 아파트 값은 되레 오르고 있었다. 그런 시장에 대고 노무현 대통령은 “하늘이 무너져도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문제의 ‘보유세 인상’ 과제가 내게 떨어진 것도 그래서였다.

 나는 청와대와 생각이 달랐다. 이미 정책은 충분하고 넘친다. 다만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이종규 세제실장, 김기태 국장을 불렀다. 나는 “아예 틀을 바꾸라”고 주문했다. 우선 재산세를 가격에 따라 매기는 종가세로 바꾸도록 했다. 그때까진 ‘몇 평이면 세금 얼마’ 식의 종량세가 섞여 있었다. 그 바람에 재산세는 지자체가 알아서 세금을 매기는 일종의 재량세가 돼 있었다. 표준화도 안 됐고 조세법정주의에도 어긋났다. 뭐가 종부세 대상인지부터 확실히 해야 했다. 집과 토지의 가격부터 제대로 매겨야 했다. 그런 다음 누진세율을 적용하자. 대신 양도소득세는 좀 깎아준다. 종부세는 과표 기준 9억원(시가 기준 약 20억원) 이상 주택 소유자부터 매기자. 급격히 세금이 늘지 않도록 캡(상한선)을 씌워 단계적으로 하자. 종부세를 국세로 해서 종전 지방세 초과분을 지역 간 불균형 해소 재원으로 쓰자. 이런 안을 청와대에 들고 간 게 8월 말. 대통령 앞에서 회의를 하는데 조윤제 경제보좌관이 난색을 표했다.

 “대상이 너무 적습니다. 종부세가 약해집니다.”

 좀 더 강화하자는 얘기다. 평소의 그가 아니다. 조 보좌관은 보유세를 급격히 올리는 것에 소극적인 입장이었다. 뒤에 대통령이 있었을 것이다. 대통령은 부동산 대책에 관한 한 이정우 전 정책기획위원장에게 기울어 있었다. 그렇다고 내 앞에서는 말을 잘 안 했다. 대신 조 보좌관을 시켰다.

 이정우는 공개 석상에서 재경부 안을 거세게 반대하고 나를 비난했다. 당시 이정우는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에서 물러나 민간인 신분으로 비상근 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나도 대응을 했다. “종부세를 좀 강화시켜 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우선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경고한다. 이정우는 “9억원 이상만 종부세를 물리면 대상이 3만5000명밖에 안 된다. 너무 적다. 대상을 더 늘려야 한다. 양도세도 깎아주면 안 된다”고 맞받았다. 그때 이정우는 민간인 신분으로 부동산 대책을 짜는 청와대 서별관 회의에 참석하고 있었다. 청와대 말이 엇갈려 나가선 곤란했다. 나는 이정우를 참석하지 못하게 했다. 그랬더니 김수현 비서관이 대신 참석했다. 지금 서울시 정책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 김수현이다. 역시 같은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해 12월 31일. 국회는 의원 입법 형식으로 종합부동산세법을 통과시킨다. 대부분 재경부 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내가 물러난 뒤 2005년 8·31 대책 때 이런 종부세 틀은 다 무너지고 만다. 양도세는 중과되고, 종부세도 강화된다. 말 그대로 대못이 박힌 부동산 시장은 이후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꽁꽁 얼어붙고 만다. 참여정부엔 뜸 들일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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