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 기자의 푸드&메드] ‘라이트’‘제로’ 붙인 과자·탄산음료, 마음놓고 양껏 드시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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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 중인 사람도 저지방 쿠키·라이트 콜라 앞에선 용감해진다.

식품회사들이 제품에 라이트(light 또는 lite)·제로(zero)·프리(free)·무(無)·저(低)란 표시를 붙이는 것은 소비자들의 이런 심리를 파고든 것이다. 대개 열량·지방·나트륨·콜레스테롤 등 소비자들이 꺼리는 성분 앞에 ‘우리 제품엔 해당 성분이 적거나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붙인다.

미국에서 ‘라이트’란 표시를 붙인 스낵 제품이 등장한 것은 10년도 넘었다. 이 표시를 처음 본 소비자들은 열광했다. 고(高)열량인 스낵을 사서 먹고 있다는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였다. ‘라이트 담배’를 피우면서 ‘나는 할 만큼 했어’라거나 ‘(라이트니까) 훨씬 독성이 약하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하며 안심하는 흡연자의 심리와 별로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당시 ‘라이트’라는 표시는 열량이 ‘가볍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칼로리는 오히려 일반 스낵보다 높지만 식감이 ‘가볍다’(바삭하다)는 뜻으로 ‘라이트’를 붙였다.

이 같은 소비자들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미국 정부는 식품에 ‘라이트’란 표시를 붙일 수 있는 기준을 1999년 제시했다. 기존 식품보다 칼로리가 3분의 1 이하이거나 지방 함량이 2분의1 이하인 식품에 대해서만 ‘라이트’란 표시를 허용한 것이다.

국내에선 콜라 등 탄산음료, 맥주·스낵 등에서 ‘라이트’ ‘제로’란 표시가 자주 눈에 띈다. 한 주류회사의 “칼로리·도수 낮춘 술로 건강 챙긴다”는 컨셉트도 라이트와 웰빙을 결합시켜 소비자를 유인하는 전략이다. 이미 일반 맥주보다 칼로리를 33% 낮춘 맥주가 등장했다. 알코올 도수를 15.5도(100㎖당 15.5g)로 낮춘 소주도 출시됐다. 술의 알코올 도수(함량)가 떨어지면 열량이 낮아지게 마련이다. 알코올 1g당 7㎉의 열량을 내기 때문이다.

라이트 콜라 등 일부 탄산음료엔 ‘0(제로) ㎉’라고 표시돼 있다. 그렇다고 칼로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칼로리는 5㎉ 단위로 표시하므로 5㎉ 미만이면 ‘0’으로 표시된다.

식품 100mL당(또는 100g당) 열량이 4㎉ 미만이면 ‘무칼로리’(무열량) 식품이라고 표시할 수 있다. 식품 100g당 40㎉ 미만 또는 식품 100mL당 20㎉ 미만인 식품은 ‘저칼로리’(저열량) 식품이라고 쓸 수 있다.

그러나 저칼로리 식품이라고 해서 과다 섭취하는 것은 곤란하다. 가랑비에 옷이 젖을 수 있어서다. 예로 100mL당 15㎉의 열량을 내는 500mL 들이 ‘저칼로리 음료’ 한 병을 모두 마시면 75㎉의 열량을 얻게 된다. 반면 100mL당 30㎉의 열량을 내는 200mL짜리 ‘일반 음료’ 한 병을 마시면 이보다 적은 60㎉를 섭취하는 데 그친다. 저칼로리 음료를 양껏 마시면 일반 음료를 적당히 마실 때보다 더 많은 열량을 섭취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식품 라벨에 ‘라이트’란 표시가 있다고 해서 해당 식품의 칼로리나 지방이 무조건 적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가령 생치즈는 일반적으로 지방 함량이 100g당 25g 정도인데 A사 제품(생치즈)에 13g이 들어 있다면 이 제품엔 ‘라이트’란 표시를 붙일 수 있다. 하지만 지방이 100g당 10g 함유된 흰 치즈는 ‘라이트’라고 표시할 수 없다. 흰 치즈엔 지방이 10g 들어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저지방 아이스크림도 일반 아이스크림보다 열량이 낮을 수 있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저지방을 앞세우지만 칼로리가 일반보다 더 높은 아이스크림도 더러 있다. 게다가 저지방 아이스크림은 맛이 기름지지 않아 만족하지 못하고 더 먹게 될 소지도 크다.

무지방 드레싱엔 지방은 없지만 설탕이 듬뿍 들어 있을 수 있다. 식품회사들이 고객을 계속 붙잡아 두기 위해 지방을 줄이는 대신 설탕 등 당분을 늘리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또 드레싱에 지방이 전혀 없으면 샐러드·채소로부터 비타민 A·D·E·K 등 지용성(脂溶性) 비타민을 흡수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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