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 대형마트 영업제한…‘큰 곳’ 빼놓고 하려다 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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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경기도 성남시가 수도권에서 처음으로 대형 유통업소의 영업제한 조례를 13일부터 시행하려다 잠정 연기했다. 조례의 근거가 되는 상위법령이 개정되지 않은 데다 이해관계자의 의견 수렴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형 유통업소 영업시간 제한 조례는 대형 마트와 기업형 수퍼마켓(SSM)의 영업시간을 제한해 전통시장을 보호하려고 만들어졌다. 서울시와 경기도는 시·도 조례를 통해 심야영업(0시~오전 8시)을 금지하고, 의무휴업일(매월 둘째·넷째 주 일요일)을 지정하도록 시·군·구에 권고하고 있다. 위반하면 1000만~3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모든 시·군·구가 이 기준에 따라 조례를 개정하고 있다.

 성남시도 이 기준대로 지난달 ‘전통상업보존구역 지정 및 대규모·준대규모 점포의 등록 제한 등에 관한 조례’를 개정했다. 수도권 지자체들 중 처음으로 13일부터 시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뒤늦게 ‘기준이 없다’는 문제에 부닥쳤다. 상위법인 유통산업발전법 시행령이 개정되지 않아서다. 현행 시행령은 의무휴업을 적용하는 대형 유통업소의 기준이 없다. 따라서 조례를 시행하더라도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와 같은 대형 마트는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보다 규모가 작은 SSM들만 영업이 제한된다. 특히 24시간 영업하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에 규제가 집중된다. 이강진 성남시 지역경제과장은 “법 적용 대상이 명확해야 하는데 당장 시행하면 특정 업체에만 규제가 집중돼 실효성을 기대할 수 없고 역차별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조례를 마련한 수도권의 다른 시·군·구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12일 인천에서 처음으로 조례를 마련한 부평구를 비롯해 서울 마포구, 경기(부천·수원·안양·하남·안산) 지자체들도 유통산업발전법 시행령이 개정된 뒤에 시행하기로 하고 입법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조례 시행은 상당한 진통을 겪고 있다. 이는 여론의 주목을 받으려는 지방의원들의 과욕에서 비롯되고 있다. 대부분의 지자체가 이번 조례를 의원 발의 형태로 개정했다. 지방의원이 발의한 조례안은 통상 15일 정도의 입법예고 및 의견수렴 기간을 생략하고 즉시 의회에 상정된다. 그만큼 기간이 단축되지만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한다.

 더욱이 이번에는 ‘상위법령 개정 후 조례 개정’이라는 입법 절차도 무시됐다. 경기도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대형 마트 의무휴업제 도입이 관심을 받으니까 의원들이 자기 치적으로 삼으려고 경쟁하면서 절차가 무시됐고 혼란이 생겼다”고 말했다. 유통산업발전법 시행령 개정안은 이달 말 국무회의를 거쳐 다음달 초께 공포·시행될 예정이다.

유길용·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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