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 확 바꾸자] 2. 집안싸움에 날새는 축구협회

중앙일보

입력

지난 10월 초. 요절한 오연교 전남 드래곤즈 골키퍼 코치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중앙병원에서 조중연 대한축구협회 전무와 축구인들간에 한바탕 설전이 벌어졌다.

"명색이 국가대표팀인데 어떻게 2년새 30차례 가까이 개편하면서 무려 99명이나 들락날락할 수 있는가. 그런 팀에서 조직력이 만들어질 수 있겠느냐" 는 지적에 조전무는 얼굴을 붉히며 "그게 왜 문제냐. 좋은 선수가 있으면 언제든지 대표선수로 차출할 수 있다" 고 맞받았다.

얘기는 대표팀 부진에 대한 책임론으로 이어져 상가(喪家)에서 삿대질과 고성이 오가는 볼썽사나운 장면이 연출됐다.

축구인들끼리의 반목과 대립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엔 그 정도가 극에 달해 한국 축구를 수렁으로 몰아넣은 커다란 원인이 되고 있다.

축구협회에 비판적인 축구인들은 "협회 집행부가 전체 축구인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독선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며 "특히 협회의 실무 최고 책임자 전무가 '자기 사람들' 로 기술위원회를 구성해 거수기 노릇을 시키고 있다" 고 주장한다.

기술위원을 역임했던 축구인에 따르면 실제로 대표선수를 선발하는 기술위원회에서 진지하게 격론을 벌여본 적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소속 팀에서조차 후보로 밀려 방출 위기에 놓인 선수가 국가대표로 버젓이 뽑혀 소속팀 감독이 반발했는가 하면, 기량이 검증되지 않은 특정 대학 선수들이 교대로 올림픽팀에 발탁돼 눈총을 받기도 했다.

대표팀을 이용한 돈벌이도 비판의 대상이다. 5년간 무려 3백50억원을 지원하는 나이키를 비롯해 대표팀 공식 스폰서는 10개가 넘는다.

그런데도 협회는 중요한 대회를 앞두면 '평가전' 이라는 이름의 친선경기를 수차례 치러 수입을 챙긴다.

선수들은 별 의미도 없는 평가전에서 다쳐 정작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는가 하면(황선홍.홍명보 등), 성의없는 플레이로 일관한 상대(유고.나이지리아 등)에게 비기거나 이겨놓고 기고만장해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협회는 소외된 축구인들이 사사건건 뒷다리를 잡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몽준 회장이 "협회가 열심히 일하지만 많은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점도 있다" 고 시인한 것처럼 축구인들을 하나로 모으지 못한 1차적 책임은 협회가 져야 한다.

문제는 학연과 지연 등으로 얽히고 설킨 축구인들의 집안싸움 때문에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한 장기 플랜이 실행에 옮겨지지 못하면서 뿌리부터 시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유소년들은 아직도 맨땅에서 '오직 이기기 위해' 경기를 하고, 지도자는 '4강 제도' 에 옥죄여 장기 합숙.구타.욕설을 당연시한다. 학부모들은 합숙비.참가비.축하비 등 명목으로 수시로 주머니를 털어야 한다.

'즐거운 기술축구' 는 간 곳 없고 '생각없는 투지축구' 일색이다. 지역별 리그제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말이 나온 지 오래건만 협회는 여전히 예산.인력부족 타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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