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구조적 모순에 치열하게 대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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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 Books 편집장

문학을 이야기하면 아름다운 시를 떠올리지요. 그게 아니라도 아름다운 사랑을 이야기한 소설을 떠올리게 마련입니다. 또 혹시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라 하더라도, 최소한 문학 체험이 지겹다거나 역겨운 일이라고는 상상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 근대 문학사에는 역겨운 소설들이 몇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역겨움은 우리 삶에서 겪은 것이기에 그냥 회피할 수만은 없는 역겨움이지요. 바로 강경애라는 독특한 작가의 작품이 대부분 그런 역겨움을 담고 있지요.

1907년 황해도 송화 지방에서 태어나 평양 숭의 여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학생 스트라이크에 가담, 퇴학을 당한 강경애 님이 문학에 입문한 것은 양주동 님과의 만남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31년, '파금'이라는 작품으로 문단에 데뷔한 뒤, 중편 '지하촌' 장편 '인간문제'등의 문제작들을 내놓은 뒤 43년, 36세의 나이로 짧은 인생을 마감합니다.

강경애 님의 작품 중에 가장 많이 읽힌 작품은 아무래도 '지하촌'입니다. 그 작품이 바로 역겨운 소설이란 이야기입니다. 동냥으로 빌어먹고 사는 한 가족의 비참한 삶을 그린 작품인데, 작품 속의 장면들은 맨 정신으로 보기 힘들 정도로 처참하고, 도무지 되 옮기기 싫을 만큼의 역겨운 묘사가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종기에 쥐가죽이 약이라고 해서 젖먹이 어린아이의 머리에 쥐가죽을 붙여놓고 종기가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살이 썩어들어가 구더기가 들끓는 장면을 이토록 구역질 나게 그린 작품을 저는 최소한 우리 소설 중에서는 본 적이 없습니다. 처음 이 작품을 본 것이 20년 전인데, 다시 들춰봐도 이 소설 속의 그 장면은 여전히 구역질이 치밀어 오를 정도입니다. 요즘 말로 정말 엽기적입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단순히 식민지 시대의 우리 민중의 처참한 삶을 보여주는 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동냥아치인 소설 속의 주인공 칠성이가 부잣집에 동냥 갔다가 개에 물렸을 때, 한 남자를 만나지요. 그 남자는 공장에서 일을 하던 중 기계에 다쳐 다리를 못쓰게 된 사람이에요.

"허허 울어선 못 쓰오. 난 공장에서 생생하던 이 자리가 기계에 물려 이리 되었소만 지금 세상이 어떤 줄 아시우." 칠성이는 머리를 번쩍 들어 사나이를 바라보니 눈에 분노의 빛이 은은하였다.(열사람 판 <강경애전집1> 291쪽에서)

동냥으로 연명하는 칠성이 삶의 비참은 그 원인이 바로 세상에 있음을 작가 강경애 님은 보여주는 것이지요. 작가는 자기의 생각을 그 사나이를 통해 이어갑니다.

"아니우 결코 아니우, 비록 우리가 이꼴이 되었는지 알아야 하지 않소. 내 다리를 꺾게 한 놈두 친구를 저런 병신으로 되게 한 놈두 다 누구겠소? 알아 들었수? 이 친구." 사나이의 이같은 말은 칠성의 뼈끝마다 짤짤 저리게 하였고, 애꿎은 하늘과 땅만 저주하던 캄캄한 속에 어떤 번쩍하는 불빛을 던져주는 것같으면서도 다시 생각하면 아찔해지고 팽팽 돌아간다. (같은 책 293쪽에서)

그냥 보여주는 게 아니잖아요. 이제 비참하게 이어가는 칠성이 가족의 삶을 역겨워도 바라보아야만 하는 까닭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특히 강경애 님은 식민지 시대에 공장 노동자와 도시 빈민의 삶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지하촌'이 도시 빈민의 삶을 그린 작품이라면, 장편 '인간문제'는 공장 노동자의 삶을 주제로 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인간문제'는 서울과 인천 등 도시의 공장 노동자들이 주인공입니다. 주인에게 정조를 빼앗기고 노동자로 변신해 방적공장에서 일하다 폐결핵으로 사망하는 선비, 소작농의 아들로 부두 노동자가 되는 첫째 등이 그들이지요.

강경애 님은 식민지라는 특수 상황에서 농업노동자가 어떻게 공장 노동자로 이전하게 되는지 아주 꼼꼼하게 들여다 봅니다. 당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대담하게 파헤치고, 노동자의 처참한 현실을 잘 보여준 작품이지요. "인간 사회에는 늘 새로운 문제가 생기며 인간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투쟁함으로써 발전될 것입니다"라는 게 작가의 생각이에요.

우리나라 여성 문학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강경애 님. 그의 문학비가 지난 해 8월 용정에 세워졌습니다. 그곳이 강경애 님의 고향은 아니지만, 한때 활동했던 곳이라는 뜻에서 박완서 오정희 씨 등 후배 여성문인들이 추렴해 건립한 거지요.

지난 해 4월 8백쪽 분량으로〈강경애 전집〉(이상경 엮음, 소명출판 펴냄)이 출판됐지요. 우리 나라 여성 문학 뿐 아니라, 근대 문학의 살아있는 모범으로 여겨지기에 한치의 모자람도 없는 강경애 문학은 바로 식민지 시대를 겪은 우리의 문학적 자산입니다.

그의 작품이 역겨운 것은 우리의 과거가 역겨운 것인 까닭입니다. 문학은 삶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과거가 역겨운 데 문학이 역겹지 않다면 그건 어쩌면 한갓 사기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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