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당, 이름만 바꿔 과거 지우는 성형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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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한국의 정당정치는 ‘성장지체 증후군’을 앓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19대 총선과 한국 정치’를 주제로 한 8일 한국정치학회 특별학술회의에서 고려대 임혁백 정책대학원장이 한 말이다. 임 원장은 ‘대의민주주의와 소셜미디어 민주주의’란 내용으로 주제발표를 하면서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의 부상과 정당정치의 위기를 연결해 설명했다.

 지난해 무상급식 투표,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대의민주주의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정당이 SNS를 동력으로 삼은 시민사회에 패배한 사건이라고 임 원장은 분석했다. 한국 정당의 무능, 무기력, 비효율성, 비대의성이 이런 결과를 불러왔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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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 원장은 “총선과 대선을 함께 치르는 올해가 대의민주주의가 소셜미디어 민주주의와 더불어 발전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황혼을 맞이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중대 선거의 해’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극단주의’도 한국 정당의 추락을 부추기고 있다고 임 원장은 지적했다. 그는 “지금 한국 정당은 ‘보수 타도’ 아니면 ‘진보 박멸’밖에 없다”며 “공존이 없다”고 비판했다. “최루탄에 공중부양, 자물쇠를 전기톱으로 자르기. 이런 극단주의 정치가 정당의 불신을 불러왔다”고도 했다. “정당과 정치의 공공성은 약화돼 이제 거의 사망할 지경”이라는 말도 했다. 그러면서 현재 상황이 이어진다면 한국 정당은 “작고 빠르며 유목적인 ‘슬림 정당’이 아니라 조직이 쪼그라들기만 할 뿐”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도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책임을 모면하고 과거를 지우려고 이름을 바꾸는 ‘지우개 정치’ ‘성형정당’의 전형만 보여주고 있다”고 임 원장은 꼬집었다. 그는 정당의 공천심사위원회도 비판했다. “선거 전문가, 여론조사 전문가, 폴리페서(Polifessor·연구보다 정치에 몰두하는 교수) 등이 국민의 대표가 될 사람들을 밀실에서 뽑는 건 ‘전문가 정치’이자 ‘기술관료적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임 원장은 “주인(국민)과 대리인(정당) 간 관계가 가까워야 하는데 국민들은 뒷전으로 물러났다. 이러면 대의정치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임 원장은 정당이 위기를 모면하려면 “지금처럼 문제가 터진 후 반응하기보다는 소셜미디어 민주주의에 대해 선제적이고 선순환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어 “선거를 통해 ‘코리안 앵거(Korean anger·한국민의 정치적 분노)’를 해소하지 못한다면 소셜미디어 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는 ‘아랍의 봄’이나 런던 폭동같이 정면 충돌 양상으로 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희대 윤성이(정치외교학) 교수 역시 ‘SNS 정치와 대의민주주의 충돌’이란 주제발표에서 “SNS 정치와 대의민주주의 간의 친화력은 매우 낮다”고 밝혔다. 윤 교수는 설문조사 결과를 근거로 “SNS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집단은 정치제도를 통한 의사표출보다는 길거리 시위 같은 비제도적 정치참여를 더 효과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결정을 대표의 손에 맡겨두기보다는 스스로 참여해 결정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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