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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쓰는 통합진보당에 인물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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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상일
논설위원

유시민·이정희·심상정이 이끄는 통합진보당이 민주통합당(민주당)과의 야권연대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민주당이 연대에 소극적이라고 주장하면서다. 그러고선 4·11 총선에 180여 명의 후보를 내보내 자력(自力)으로 원내교섭단체(의석 20석 이상)를 구성하겠다고 했다. 통합진보당은 협상에서 수도권 선거구 열 곳과 영남을 제외한 호남·대전·충청·강원의 선거구 열 곳을 달라고 했다. 이곳엔 민주당 후보를 내지 말라는, 소위 ‘10+10안’을 제시한 것이다. 민주당은 ‘4+1안’으로 맞섰다. 수도권에서 서울 관악을(이정희 대표)·은평을(천호선 대변인)·노원병(노회찬 대변인)과 경기도 고양 덕양갑(심상정 대표), 지방에선 충남 예산-홍성만 줄 수 있다고 했다. 통합진보당은 “농락당한 기분”이라며 협상 테이블에서 일어섰다.

 민주당 안은 통합진보당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다. 수도권에선 통합진보당 간부 네 명 외엔 누구에게도 선거구를 양보할 생각이 없다고 한 때문이다. 예산-홍성은 새누리당 강세 지역인 만큼 통합진보당 입장에선 얻으나마나다. 연대만 이뤄지면 당선되는 호남에 대한 민주당의 태도도 통합진보당의 속을 뒤집는 것이다. 호남에서 여섯 곳을 달라 했는데 한 곳도 줄 수 없다고 해서다. 기대했던 의석 여섯 개 중 단 하나도 담보물로 받지 못한 터이니 울화가 치밀 수밖에 없을 거다.

 민주당은 그간 오만한 행태를 보였다. 보름 전엔 ‘한명숙(민주당 대표)-이정희 회동’을 통해 연대 의지를 다지자는 통합진보당의 제의를 거부했다. 만나면 나중에 부담이 될 약속을 할까 봐서고, 대표의 격(格)도 다르다고 여겨서다. 미니 좌파 정당인 진보신당이 연대 논의에 끼고 싶다고 했을 때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에 ‘너희가 진보신당 문제를 해결하라’는 투로 책임을 떠밀었다. 민주당이 콧대를 세운 건 ‘반(反)MB(이명박 대통령) 정서’ 확산으로 지지율이 오른 만큼 혼자의 힘으로도 총선에서 대승할 수 있다는 자만심이 생겨서다. 야권 연대로 얻는 것이 주는 것보다 작을지 모른다는 이기심도 발동해서다.

 민주당이 탐욕스럽고 속 좁은 건 사실이다. 한데 통합진보당의 볼멘소리도 밉상이다. 제 두레박 끈 짧은 건 탓하지 않고 남의 우물 깊은 것만 욕하는 꼴이어서다. 통합진보당이 공천하겠다고 하는 후보 명단을 유권자가 살펴본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이 정도라면 민주당이 ‘10+10안’을 받는 게 맞다”고 볼까, 아니면 “저런 정도로 선거구를 많이 내놓으라고 하는 건 횡포”라고 생각할까.

 국회 본회의장 ‘최루탄 테러’의 주인공인 통합진보당 김선동(전남 순천) 의원은 지난해 4월 보궐선거에서 야권 연대의 혜택을 입었다. 당시의 민주당(민주통합당 전신)이 훌륭한 인적 자원을 갖고 있었음에도 후보를 내지 않았기에 김 의원은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도 민주당의 양보를 요구하고 있지만 순천에선 “고장 망신을 시킨 사람이 염치없이 군다”는 비판이 쏟아진다고 한다. 국회 경위 등을 폭행하고 국회 사무총장실 탁자 위에서 수차례 ‘공중부양’하면서 집기를 훼손,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강기갑(사천-남해-하동) 의원도 출마한다고 하니 통합진보당 사전엔 ‘쇄신’이란 단어가 없나 보다.

 연대 협상이 깨지자 통합진보당이 꺼낸 카드는 공갈이다. “우리 후보들이 독자 출마하면 민주당은 수도권에서만 60석가량 잃게 될 것”이라며 겁주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협상이 재개될지 모르고, 통합진보당은 상당한 양보를 얻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협박으로 통합진보당이 수도권 등에서 제법 많은 선거구를 챙긴들 총선에서 이길 수 있을까. 지금까지 고른 인물들로 유권자를 유혹할 수 있을까. 노회찬 대변인은 “민주당에서 ‘양보해 봤자 통합진보당 후보는 못 이긴다’고 하는데 잘못됐다”고 했다지만 민주당 판단이 맞는 것 아닐까. 수도권에 김선동·강기갑 같은 이가 나온다면 찍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유시민도 2010년 경기지사 선거 때 야권연대 후보로 나섰지만 패배하지 않았던가.

이상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