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홍수의 싱가포르뷰] 유동성 이벤트 … 럭셔리 기업 함박웃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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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싱가포르에서는 자동차 한 대를 구입할 때마다 등록세를 낸다. 요즘 등록세는 7만4000싱가포르 달러(약 6600만원) 수준이다. 웬만한 중형 승용차를 한 대 구입하려면 총 1억원이 훌쩍 넘게 든다. 여기에 혼잡세·유류세 등 갖가지 세금이 많아 유지비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길거리에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최고급 스포츠카와 승용차가 넘쳐난다.

최근 열렸던 싱가포르 에어쇼에서는 50억~100억원 정도의 개인 제트기가 전시돼 부유층의 관심을 끌었다고 한다. 전 세계 선진국이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현실이 무색해지는 장면이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럭셔리 시장은 경기침체에도 급격하게 성장했다. 대표적인 명품 루이뷔통의 모회사인 LVMH그룹의 매출은 2009년 이후 40%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순이익은 더 빠르게 늘어 75% 성장했다. 이 같은 실적 덕에 유로존 국가인 프랑스 거래소에 상장됐는데도 LVMH 주가는 2년 동안 60%나 올랐다. BMW나 프라다 등 다른 럭셔리 기업도 실적이 늘었고 주가는 상승세를 탔다. 주변의 헤지펀드 매니저 가운데서도 상당수가 이런 럭셔리 기업에 투자해 꽤 재미를 봤다.

 세계 경기불황에도 이런 럭셔리 기업들이 성장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그 기업에 뛰어난 경영전략이 있기 때문이라고 단순화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들 럭셔리 기업이 최근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은 지난 몇 년간 선진국이 추진한 시장 유동성 확대정책의 산물이기도 하다.

 시장에 현금이 풀리면 인플레이션이 따라오게 마련이다. 각국 정부가 시장에 자금을 풀면 주식시장부터 오르는 이유다. 거래되는 자산 가운데 가격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주가에 ‘인플레’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인플레 환경의 최대 수혜자는 부유층이다. 매달 생활비 쓰기에 빠듯한 중산층보다는 큰 규모의 자산을 이미 보유하고 있는 계층이 인플레 상황에서 부를 축적하기가 훨씬 쉽다. 금융위기 때도 럭셔리 제품이 잘 팔린 이유다. 많은 이가 LVMH의 성공을 중화권 시장의 신규 개척으로 꼽지만 최악의 경제 상황을 겪고 있던 유럽 내 매출도 지난해에 20% 늘었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얼마 전 다녀온 싱가포르 헤지펀드 콘퍼런스에서도 세계 유동성이 전 세계 경제와 주식시장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가장 활발하게 논의했다. 올해 내내 세계 각국 정부는 모두 엄청난 규모의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할 전망이다. 유럽에 이어 일본도 이달 중순 10조 엔 규모의 국채 매수계획을 내놨다. 중국은 토요일인 18일 밤 지급준비율을 0.5%포인트 낮춘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풀린 돈은 주식시장을 시작으로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 증시에서는 수출주를 비롯한 경기 민감 업종과 중국 관련 업종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다만 유동성 유입 속도가 완만해지고 있다는 점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한홍수 KIARA 주식부문 최고투자책임자(C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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