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성선설의 발상지에서 인권유린이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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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이원진
정치부 기자

26일 오후 서울 효자동 중국대사관 앞. 엿새째 이곳에서 단식투쟁을 해 온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중국은 유엔 인권위에서 이 문제가 거론되지 않기만 바라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더 강하게 나가야 합니다.”

 목소리엔 힘이 없었지만 발언 내용은 평소보다 더 강했다. 그는 지난 24일 북한의 고위 간부 3명이 중국을 방문해 탈북자들을 전원 북한으로 빨리 돌려 보내 달라고 요구했다는 정보도 공개했다. 이를 근거로 “우리 정부는 빨리 나서 이들의 강제북송을 막아 달라”고 촉구했다. 탈북자 문제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우리는 내부적으로 너무 느긋하다는 비판도 했다. 미얀마와 콩고민주공화국 등에서 온 외국인 난민 30여 명도 그와 합세해 중국 정부의 탈북자 북송에 항의하는 구호를 외쳤다.

국내에 정착한 2만3000명의 탈북자 중 여성은 70%에 달한다. 많은 탈북여성들은 북에 두고 온 아이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중국 공안에 체포돼 구타와 고문 등 끔찍한 인권유린을 겪었던 탈북자일수록 그 불면의 고통은 심하다.

 박 의원은 2008년부터 정부와 중국에 탈북자 인권 문제를 줄기차게 제기해 왔다. 정치인인 그가 총선을 의식해 탈북자를 이슈화한 것 아니냐며 색안경을 쓰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론 그의 진정성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24일엔 여야가 만장일치로 그가 주도한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 문제를 다루는 외교통상부의 태도도 확연하게 변했다. ‘조용한 외교’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문제 제기’에 나선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전면에 나섰지만 결정은 역시 중국의 몫이다. 중국은 여전히 “국제법과 국내법,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국내외에서 제기된 탈북자 인권 유린 문제에 대해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2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되는 유엔 인권이사회 기조연설을 통해 중국의 입장 변화를 촉구할 예정이다. 중국을 직접 거명하진 않되 ‘관계국들’이란 표현으로 탈북자들이 강제북송돼선 안 된다고 강조할 방침이다. 중국의 체면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일이 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인권은 체제와 국가를 초월한 보편적 가치다. G2 반열에 올라선 중국이 이를 언제까지나 무시할 수는 없다. 국격(國格)에도 직결된 문제다. 더구나 인간에겐 누구나 남에게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이 있다는 성선설(性善說)의 주창자 맹자의 고향이 중국 아닌가. 단식투쟁 중인 박 의원의 호소에 선한 마음이 담긴 답이 봄소식처럼 날아오기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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