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열전] 반 데 사르(Van der Sar)

중앙일보

입력

2000년 6월 29일 암스테르담 아레나(Amsterdam Arena)에서 벌어진 유로 2000 준결승 이탈리아와 네덜란드의 경기.

마지막 키커로 나선 보스펠트(Paul Bosvelt)의 슈팅이 거미손 골키퍼 톨도의 선방에 막히면서 이탈리아 선수들이 그라운드 한가운데서 서로 얼싸안고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가운데, 패배가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 깊은 아쉬움에 잠겨 퇴장하는 한무리의 네덜란드 선수들 중 유독 처진 어깨에 고개를 떨구는 반 데 사르(Edwin Van der Sar)의 모습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이번 시즌 내내 자신을 돌보지 않는 승운에 체념이라도 한걸까?’그의 머릿 속엔 분명 약 두달전 막을 내린 이탈리아 세리에 A 99/00 시즌 최종 라운드 페루지아와의 원정 경기에 대한 기억이 재빠르게 스쳐 지나갔을 대목이었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5월 14일 레나토 쿠리(Renato Curi) 스타디움.

더 이상 경기가 진행되기 어렵다는 콜리나(Pierluigi Collina) 주심의 판단에 의해 전반전이 끝난 뒤 경기는 잠시 중단되었다.

하지만 쏟아 붓던 비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멈추면서 30분 후 재개된 경기에서 비기기만해도 우승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유벤투스는 후반 6분만에 상대 수비수 칼로리(Alessandro Calori)에게 통한의 결승골을 내주면서 33라운드까지 지켜왔던 선두자리를 마지막 라운드에 결국 라치오에게 넘겨주고 만다.

시즌 내내 32경기 출장에 단 19실점만을 내주는 더 바랄나위없는 경이로운 방어율을 기록했던 반 데 사르.

아약스 시절부터 팀의 승리를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담당하던 그에게 찾아온 잇따른 비운이 그에겐 분명 남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970년 10월 23일 네덜란드의 Voorhout란 곳에서 태어난 반 데 사르는 유소년 시절 아마츄어 클럽인 Noordwijk에서 활약하던 중 아약스에 스카우트되는 행운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유스팀에서 활약하던 그에게 주전 도약의 기회가 온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92/93 시즌 당시 팀의 주전 골키퍼였던 스탠리 멘조(Stanley Menzo)가 프랑스의 옥세르(AJ Auxerre)와 갖은 UEFA 컵 준준결승 경기에서 어이없는 실수를 범하면서 그와 교체해 투입된 반 데 사르는 자신의 숨은 기량을 맘껏 펼쳐보일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후 그의 능력에 고무된 루이스 반 할(Luis Van Gaal)에 의해 전폭적인 신뢰를 얻으면서 단숨에 부동의 주전골키퍼로 군림한 반 더 사르는 소속팀에서의 뛰어난 활약에 힘입어 대표팀에서도 베테랑인 첼시의 데 후이(Ed De Goey)를 후보로 밀어내면서 유로96 이후 주전자리를 꿰차는데 성공하고야 만다.

네번의 자국리그 우승을 비롯, 네덜란드 컵 우승 두 차례, 네덜란드 수퍼컵 우승 등의 자국 타이틀을 포함해서 챔피언스 리그, UEFA 컵, 유러피언 수퍼컵 등의 유럽 주요 클럽대항전과 도요타 컵을 석권하면서 명실공히 9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한 수퍼 클럽 아약스의 안방마님 역할을 무려 7년여동안 흠잡을 데 없이 해낸 반 더 사르.

이후 99/00 시즌에 앞서 약 1천만불의 이적료에 이탈리아 최고 명문 유벤투스로 이적하면서 클럽 최초의 비이탈리아 출신 골키퍼로 주목 받기도 한 그는 전 이탈리아 대표출신 주전 골키퍼 페루찌의 공백을 그 이상으로 잘 메워주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이탈리아 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장신을 이용한 탁월한 제공능력과 뛰어난 반사신경에 곧잘 다급한 상황에서 재빠른 발을 사용해 클리어링하는 그는 발재간 역시 필드 플레이어 못지 않다. 이런 능력으로 최후방 스위퍼 역할도 해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또다른 장점 중에 하나인 것이다.

97/98 시즌엔 페널티 킥으로 득점을 올렸던 이채로운 경력을 소유하기도 한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동요하지 않는 침착하고 우아한 방어능력으로 골키퍼의 차원을 한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당대 최고의 골키퍼로 손꼽히는 슈마이켈, 올리버 칸, 바르테즈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새로운 시즌 지난해 잃었던 타이틀과 챔피언스 컵을 노리는 유벤투스로서는 델 피에로와 인자기의 골소식만큼이나 반 더 사르의 눈부신 선방에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없을 거란 사실은 너무나도 당연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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