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건보가 정한 약값은 이의신청 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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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미 양국이 자유무역협정(FTA) 일부 조항에 대해 여전히 입장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석영 외교통상부 FTA교섭대표는 22일 기자브리핑에서 “FTA 이행점검협의 과정에서 (양국 간에) 350여 가지 질문이 오갔고, 이 중 일부에서 양국 간 의견 차이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정부는 미국 입장에 동의하지 않고 기존 입장을 끝까지 견지했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게 ‘의약품 독립적 검토 절차’의 대상이 어디까지냐는 문제다. 대부분 약값은 건강보험공단과 제약사 간 협상으로 결정된다. 미국 측은 이러한 약값 협상 결과가 독립적인 검토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미국 측이 협정문을 잘못 해석했다고 본다. 최 대표는 “협정문에서 정한 검토 대상은 ‘정부의 권고 또는 결정’”이라며 “약값은 공단과 제약사 간 ‘협상’의 결과이지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게 아니므로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FTA 반대론자는 그동안 미국 측 주장을 근거로 ‘한·미 FTA가 발효되면 (다국적 제약사가 건강보험공단의 가격 결정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어) 약값이 폭등한다’고 주장해왔다.

 200달러 이하 소액 특송화물에 대한 관세 면제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한국 정부는 미국에서 오는 화물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이에 비해 미국은 미국산 물건이면 제3국을 경유해 들어올 때도 관세를 면제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미 FTA에 따라 우리나라에 도입된 ‘동의의결제’에 대해서도 입장 차이가 있었다. 최 대표는 “두 나라 국내법이 규정한 동의의결제 적용 범위가 서로 달라 미국 측이 이를 지적했다”며 “정부는 우리 국내법이 협정과 합치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런 의견 차이에 대해 최 대표는 “협정의 해석은 당사국의 자유”라며 “한쪽이 분쟁을 제기해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는 자국에 유리한 해석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최 대표는 야당의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 폐기 주장에 대해 “정부는 폐기에 대한 검토는 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미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은 물론,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ISD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미국이 ISD 재협상의 대가로 쇠고기 협상 카드를 꺼낼 가능성에 대해서는 “정부가 양보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없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의약품 독립적 검토 절차=건강보험급여 대상 의약품에 대해 제조·수입업자가 가격 등과 관련, 정부나 정부 관련 기관(건강심사평가원과 건강보험공단)과 별도의 심사단을 구성해 이의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한 절차. 예컨대 미국은 한국의 약값을 정부가 ‘결정’한다고 보고 별도의 검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우리 정부는 국내 약값은 건강보험공단과 제약사의 ‘협의’로 결정되는 만큼 별도의 검토 대상이 아니라고 맞서고 있다. 

◆동의의결제=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는 기업이 소비자 피해 구제 예방 방안을 제출하면 위법성을 따지지 않고 과징금이나 검찰 고발 등을 면해주는 제도. 한·미 FTA 이행법률의 하나로 도입됐다. 미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동의명령제(Consent Order)가 시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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