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스틸러(Scene Stealer) ③ 배우 고창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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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고창석의 얼굴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건 덥수룩한 수염이다. 그는 “수염도 연기의 중요한 소품이기 때문에 평소 면도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영화 ‘맨발의 꿈’에선 수염을 깔끔하게 밀었고, 사극 ‘혈투’에서는 자신의 수염을 그대로 사용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배우 고창석(42)의 얼굴에는 굽이굽이 강물 같은 인생이 녹아 있다. 그는 1990년대 초 탈춤·마당놀이에 빠져 번듯한 대학(부산외대 일어과)을 중퇴했다. 김양식장·철공소 등을 전전하며 노래극단 무대에 섰다. 뒤늦게 연기에 눈떠 늦깎이 연기학도(서울예대 연극과)가 된 이후 연극판에 뛰어들었다. 그러던 중 영화 ‘친절한 금자씨’(2005) 오디션에 ‘덜컥’ 합격돼 충무로에 발을 들여놓았다.

 ‘의형제’에서 베트남 두목으로, ‘영화는 영화다’에서 영화감독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그는 이젠 웬만한 영화에 얼굴을 내미는 ‘명품 조연’이 됐다. 지난해 ‘퀵’ ‘고지전’에 이어 올 상반기 ‘시체가 돌아왔다’ ‘미쓰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아부의 왕’ 등 영화 네 편에 등장한다. 그는 “배우가 되려고 발버둥치진 않았다. 흐르는 대로 살다 보니 배우가 됐다”고 말했다.

 -많은 직업을 거쳤는데.

 “20대 후반부터 신발 공장, 음료수 공장, 서커스단 보조, 이벤트 연출 등 안 한 게 없다. 연극만으론 먹고살 수 없었으니까. 마흔 되면서부터 배우로 먹고살 수 있게 됐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고지전’에서 독립군 출신 국군 상사로 출연했던 고창석.

 -다양한 경험이 도움이 됐겠다.

 “배우라는 게 어릴 때는 아이디어와 컨셉트로 싸우지만 나이 들면 그간 살아왔던 걸로 겨루는 거다. 존경하는 대선배 신구의 아우라는 그런 경험에서 나오는 거다. 결국 잘 살아야 한다.”

 -낮에는 빚에 몰리고, 밤에는 시상식장에 서기도 했다는데.

 “4년 전쯤이다. 제작한 공연이 망해서 빚을 지게 됐다. 그때 출연한 ‘영화는 영화다’가 반응이 좋으니까 빚 독촉이 들어오더라. 사기죄로 고소돼 경찰서 조사를 받은 날 밤 MBC영화제 시상식에서 제시카 고메즈와 레드카펫을 밟았다. 이른바, 미녀와 야수였다.”

 -별명이 ‘뚱땡이’다. 속상하진 않나.

 “전혀. 관객에게 편안하게 다가가는 별명이다. 요즘은 ‘고요미’라 불린다. 고창석과 귀요미의 합성어다. 여중생들도 ‘아저씨 귀여워요’ 한다. 부모님께도 한 번도 귀엽다는 말 못 들었는데, 마흔 넘어 그런 말 듣는다.”

 -자세히 뜯어보면 무서운 면도 있다.

 “이목구비가 순하게 생기진 않았다. 힘들지만 웃으며 살려고 하니까 인상이 좋아졌다. 푸근함 속에 날카로움도 있기 때문에 코믹 연기부터 악역까지 배역의 폭이 넓어졌다. ‘혈투’ ‘부산’에서 밑바닥의 처절한 생존본능을 보여줬다면 ‘헬로 고스트’에서는 휴머니티를 보여줬다.”

 -석 달간 찍은 ‘맨발의 꿈’ ‘부산’보다 사흘 찍은 ‘의형제’ ‘인사동 스캔들’로 더 기억되지 않나.

 “욕심내지 않고 찍은 영화가 반응이 좋았다. ‘의형제’에서 코믹한 베트남 두목 연기로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역할이 크면 클수록 어깨에 힘이 더 들어갔구나 하고 반성한다.”

 -가장 큰 자산이라면.

 “시나리오보다 누구와 함께하는가를 기준으로 작품을 선택한다. 부족한 시나리오는 동료, 스태프들의 의기투합으로 메울 수 있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영화는 영화다’ ‘의형제’ ‘고지전’ 등 장훈 감독과 계속 일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괴물’이 트라우마(상흔)로 남았다고 했는데.

 “‘괴물’에서 간호조무사 2로 나왔는데 한 줄 대사를 못해 계속 NG가 났다. 결국 편집됐다. 지금도 봉준호 감독을 만나면 재빨리 숨는다. 봉 감독이 다시 불러줬으면 좋겠다.”

◆신 스틸러(Scene Stealer)= 영화·드라마에서 훌륭한 연기나 독특한 개성으로 주연 이상으로 주목을 받은 조역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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