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제언] “교육의 질적 향상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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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경제상황이 급속히 나빠지면서 연초까지만 해도 그렇게 심각하던 IT인력 구인난도 주춤해지고 있는 듯 하다. 최근의 보도에 의하면 비록 체계적인 조사결과는 아니지만 IT인력의 구인 대 구직비율이 지난 3월에 3:1 정도이던 것이 8월에는 1:1 정도 수준까지 떨어졌다고 하니 전체적으로 볼 때 현재로서는 IT인력난 문제가 더 이상 시급한 정도는 아니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단기적인 현상일 뿐 경제상황과 투자심리가 호전되면 IT인력난은 곧 다시 찾아 올 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IT인력부족의 근본원인은 정보화와 e-business의 확산이며 이는 이미 우리 경제의 피할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물론, 벤처창업 열풍과 IMF위기로부터의 경제적 반등이라는 요인들이 겹쳐서 작용했던 1년 전과 비교한다면 앞으로 전개될 인력난은 상대적으로 덜 피부로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IT인력부족이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현상으로 자리잡게 된다면 우리 산업의 경쟁력도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구조적 현상 될 경우 산업 경쟁력도 한계에 이른다

다행히도 적어도 IT인력 부족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상당히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부가 IT인력양성 문제에 대하여 향후 5년 간 20만 명의 양성계획을 추진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설 뜻을 비추고 있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대학의 경우도 최근 수년간 IT관련 전공학과의 정원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에 있는데, 이는 긍정적 방향의 변화라고 평가된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최근의 이같은 IT인력양성 노력이 인력의 양적 증가에만 집중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점이다. 사실, 이미 우리 나라 4년제 대학의 컴퓨터 관련전공 졸업자는 ''99년 기준 연간 1만 2천 명에 달하고, 여기다가 전기전자 및 통신관련 전공자까지 합치면 2만 5천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다가 연간 5만 명에 달하는 전문대 졸업자와 6만 명에 달하는 비정규 직업훈련 이수자 등을 고려하면 중복계산과 타분야 유출 둥의 효과를 감안한다고 해도 적어도 배출인원 기준만으로는 IT인력 부족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인력의 양적 증가에만 집중되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IT전공자의 상당수가 산업에서 필요로 하는 기본적인 실무적 소양조차 갖추지 못한 상태로 배출된다는 데 있다. 필자는 과거에 신규졸업 IT인력이 채용 후 본격적으로 제구실을 하기까지는 보통 2년 정도가 걸린다는 조사결과를 얻은 적이 있으며, 이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루가 달리 급변하는 IT업계에서 그것도 자금사정이 넉넉지 못한 벤처기업들이 앞으로 자체적 인력육성을 위해 이와 같은 투자를 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따라서, 국내 IT인력부족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관련학과의 정원을 늘리는 정책과 더불어 전공교육의 질을 제고하는데 역점을 둘 필요가 있다. 국내최고 수준의 대학인 KAIST와 서울대의 컴퓨터공학과 재학생수는 약 550명 내외로 미국 Stanford 대학의 컴퓨터 학과와 크기가 비슷하다. 하지만 교원의 수에서는 KAIST와 서울대가 각각 29명과 16명에 불과한데 반해 Stanford 대학은 86명에 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대학교육이 이론위주로 흐르고 프로젝트 위주의 실무적 강의가 부족하다고 비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될지 모른다.

물론 대학이 갑작스러운 교수의 충원에 나서길 기대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산업체 겸임교수나 객원교수 등의 적극적인 활용은 한 가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Stanford 대학의 86명교수 중에는 이와 같은 형태로 활용되는 교원이 34명에 달하는 반면 KAIST나 서울대의 경우에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또한 교육법 상의 여러 가지 장애가 있기는 하지만 일부 대기업 등에서 실시되고 있는 양질의 IT 실무교육을 이수하는 경우 정규교육과정상의 학점으로 일부 인정하는 방안 등도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권남훈 박사는 서울대 경제학과(1991)를 거쳐 미 스탠포드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부터 현재까지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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