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지균 감독의 신작 '청춘'

중앙일보

입력

요즘에 곽지균 감독을 아는 20대 관객이 몇이나 될까. 그는〈겨울나그네〉와〈이혼하지 않은 여자〉그리고〈깊은 슬픔〉에 이르기까지 한국 멜로드라마의 중견감독으로 추앙받는 연출자다. 1980년대에〈겨울나그네〉등에서 그가 보여주었던 애잔한 감수성이 잔뜩 묻어나는 영상은 한국형 멜로의 전범으로 추앙받기도 했다.

〈청춘〉은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곽지균 감독의 신작이다. 김정현, 배두나, 김래원 등의 청춘스타를 이끌고 제작한 〈청춘〉에서 곽지균 감독은 연출은 물론이고 시나리오까지 직접 집필했다.

고3 수험생인 자효는 하동으로 전학을 온다. 같은 반 여학생 하라는 자효를 유혹하고 엉겁결에 자효는 첫경험을 치른다. 자효에게 강한 집착을 보이던 하라는 학교에서 자살을 하고 자효는 사랑없는 섹스에 몰입한다. 대학에 진학한 자효는 남옥이라는 간호사를 만나 육체적 관계를 맺는다. 한편, 자효의 친구 수인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교사인 정혜를 짝사랑하던 사이. 대학선배와 첫 섹스를 한 수인은 이후에도 정혜를 향한 욕망을 억누르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수인의 마음을 받아들이게 된 정혜는 그와 하룻밤을 함께 지내지만 자신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충고한다.

"내 나이 30대 초반에 〈겨울나그네〉를 만들어 시대의 상처를 짊어진 젊음의 고뇌를 그렸다면 지금은 오히려 그 자체로서의 '청춘'을 마주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는 청춘의 문앞에 서있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청춘예찬이다" 곽지균 감독의 이야기다.

〈청춘〉은 20대 초입에 접어든 청춘의 통과의례로서의 첫경험을 다루고 있다. 영상이 탐미적이다. 눈(雪)과 낙엽, 그리고 폭포 등의 자연풍광이 어우러지면서 젊음의 분위기를 한껏 과시하고 있다. 이미 1980년대에 영화의 '디테일' 면에서 인정받은 바 있는 곽지균 감독은 화사하고 때로 눈부신 영상으로 영화를 포장하고 있다. 섬세한 방식으로 사랑을, 그것도 짝사랑과 서로 엇갈린 사랑이야기를 유려하게 카메라로 잡아내는 솜씨는 예전에 비해 그리 녹슬지 않았다.

〈청춘〉에서 놀라운 점은 이 영화가 다분히 선정적이라는 사실이다. 영화의 흐름과 그리 상관없이, 수인과 자효는 끊임없이 섹스에 몰두한다. 자취방과 여관 등을 오가면서. 배두나 등의 배우는 노출연기까지 마다 하지 않으면서 영화에서 에로틱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청춘〉은 여느 청춘드라마처럼 20대 초입의 젊은이들의 방황과 일탈을 그리고 있지만, 지나치게 '섹스'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과연 대학생들이 고민하고 머리를 쥐어뜯을 문제가 어떻게 여자와 몸을 섞을 수 있는가, 라는 것 밖에 없을까? 수인과 자효가 나름대로 방황하는 원인, 즉 상처입은 마음과 외사랑이라는 설정 역시 이 기준으로 보면 성적 오딧세이 자체를 합리화하기 위한 것에 그치고 만다.〈청춘〉에선 20대들의 현실에 대한 통찰력이 짙게 배어나지 않는다.

진희경과 배두나의 열연에도 불구하고〈청춘〉에선 여성 캐릭터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영화에선 수인과 자효가 섹스를 하고자 마음먹으면 모든 문제가 쉽게 해결된다. 여성이 먼저 접근하는 경우도 있고 유혹의 눈길을 던지면 순순이 침대에 몸을 눕힌다. "나랑 잘래요?"라고 말하면 "어떡하지? 거절하기 싫은데"라고 하며 옷을 벗는다. 여교사인 정혜 역시 제자의 편지 몇통에 넘어가 그와 잠자리를 함께 한다. 영화에서 대부분의 여성 캐릭터는 주변인이자 남성의 성적 만족을 위한 희생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이 대목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영화〈청춘〉은 고운 디테일과 곽지균 감독 특유의 서정성이 배어나고 있음에도,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청춘드라마가 필히 갖춰야 할 미덕을 잃어버렸다. 때로는 신파가 개입하고 때로는 과다한 섹스 장면이 끼어들면서. 10월14일 개봉.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