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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재현 칼럼

예술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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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기획재정부가 주관하는 정부 산하 연·기금 운용기관 경영평가에서 거의 매년 바닥권 점수를 받아 왔다. 예술위 직원들로서는 창피하고 속상할 것이다. 평가 실무를 주로 경영학 전공자들이 담당하기 때문에 문화예술 고유의 특성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불만이 크다. 예술위는 문예진흥기금을 풀어 예술계를 지원한다. 그런데 지원한 ‘효과’를 어떻게 측정할지가 항상 문제다. 경영평가단이 정성(定性) 아닌 정량(定量)평가에 치우친 탓에 만년 하위권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항변은 꽤 타당성이 있다.

 설마 “그렇다면 너희들이 한번 해봐라”는 반발 심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어쨌든 문화예술위는 재작년 조세연구원에 ‘예술가의 창조역량 지수 및 문예진흥기금사업 성과지표 개발 연구’를 의뢰했다. 조세연구원은 기획재정부 산하 연구기관이니 칼자루를 휘두르던 쪽에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주문한 셈이다. 연말에 나온 연구결과 보고서는 반쪽짜리였다. ‘예술가의 창조역량 지수’ 대목에서 사실상 두 손을 들었다. ‘예술창조역량은 추상적이고 전체적이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밝히기 어렵다. … 현재와 같은 데이터 구축상태를 고려할 때 창조역량 지수의 개발 및 이에 대한 지표 관리는 요원한 것으로 사료된다’고 적시했다. 문화예술위는 당초 7000만원이던 연구용역비를 절반 가까이 깎아 지급할 수밖에 없었다.

 조세연구원이 아니라 조세연구원 할아버지가 맡아도 ‘예술가의 창조역량’을 정확히 재기는 불가능하다. 도대체 ‘예술’은 무엇이고 누구까지 ‘예술가’이며 ‘창조’와 ‘창조역량’은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대체로 짐작들은 하지만 개념 주변에 광범위한 회색지대가 있어 콕 집어내기는 어렵다. 게다가 멋지게 골을 넣는 동작에 “야, 예술이네!”라 하고 ‘예술당구’가 인기를 끌며, “국물 맛이 예술”이라는 말도 자주 듣지 않는가. 선진국이라고 신통한 마법이 있을 리 없다. 조세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에는 창조역량 지수와 비슷한 개념으로 ‘보헤미안 지수’나 ‘게이 지수’가 있다고 한다. 한 지역에 창조적인 계층이 얼마나 있는지를 그곳에 거주하는 집시(로마)나 게이(동성애자)의 수로 측정할 수 있다는 발상에서 나온 지표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 지표를 우리나라에 적용하기는 어려울 게 뻔하다.

 올해 시행되는 ‘예술인 복지법’을 놓고도 비슷한 진통이 재현되고 있다. 당초 복지법 혜택이 예상되는 예술인은 5만7000명, 18만 명, 54만 명까지 통계에 따라 들쭉날쭉이었다.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예술인을 ‘창작, 실연, 기술지원 등의 활동을 증명할 수 있는 자’로 규정했다. 그러니 ‘증명’ 방법에 따라 수혜 대상이 엄청 달라지게 된다. 문화체육관광부 담당자가 “아마 어떤 기준을 내놓아도 예술계로부터 비판이 제기될 것 같아 걱정”이라고 실토할 정도다. 복지법 덕분에 예술인들도 산업재해 보상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됐지만, 이 경우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문인이나 일반 화가들은 근로자가 아니라서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불만이다. 문화부는 산재보험 적용 대상 예술인 실태조사에 들어갔고, 고용노동부도 산재보험법 개정에 앞서 제도설계 연구용역을 의뢰한 상태다. 표준계약서, 예술인 경력 증명 등 추가로 해결해야 할 문제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예술인 복지법 시행 첫해인 올해 반영된 예산은 겨우 10억원. 당장 내년부터 예산을 얼마나 더 확보할지, 민간 부문에서는 얼마나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큰 과제로 대두됐다.

 어떤 제도가 생기면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내쫓는 폐해가 생기게 마련이다. 터놓고 말해 자칭 예술인, 사이비 예술인들이 먼저 고기 냄새를 맡고 달려들 수 있다는 말이다. 예술단체에 이름만 걸어놓은 사람, 브로커가 남발한 예술활동 경력 증명을 들고 오는 사람, 자기 돈 내고 당선된 ‘문학상’ 수상자들이 떼지어 지원을 요구하는 사태가 없으리라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실타래를 풀기가 만만치 않아 그렇지, 사실 예술인복지법은 우리 문화예술 역사상 획기적인 이정표이자 선진국 반열에 들어가는 신호탄에 해당한다. 개미들만 살던 나라에서 베짱이와 여치의 가치를 드디어 공인받은 셈이다. 특정 직업군을 대상으로 복지법이 제정되기도 처음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지지부진하던 법안이 왜 급속히 탄력을 받았는지 돌아보았으면 한다. 작년 이맘때 안양 월셋집에서 쓸쓸히 숨을 거둔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 덕분 아니었던가. 그 덕에 수많은 ‘최고은’들이 비슷한 비극을 면할 가능성이 생긴 것 아닐까. 나는 예술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명쾌히 답할 능력은 없지만 그게 아주 중요하다는 것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