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보약이 쓰다고 버릴건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2면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몸에 좋은 약은 입에는 쓰다고 한다. 쓰다고 해서 보약을 먹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마찬가지다. 지금 당장 쓰다고 해서 먹지 않고 버린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도 함께 버려질 수 있다.

 폐쇄경제를 선택하느냐, 개방경제를 선택하느냐의 결정은 한 국가의 흥망을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중대한 일이다. 과거의 역사가 이를 말해 준다.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은 모든 나라와 대외관계를 차단한 쇄국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는 어땠는가. 근대화와 부국강병에 실패하고 결국 일본의 침략을 받아 주권을 빼앗겼다. 반면에 비슷한 시기에 일본은 메이지유신(1868년)을 단행하고, 개방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급속한 산업혁명과 경제성장을 이루고 동북아에서 강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대외무역의존도가 87.9%(2010년 기준)에 이르는 우리나라가 선진 일류국가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개방형 통상정책이 필수적이다. 특히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 지지부진해 주요국이 FTA를 경쟁적으로 추진하는 상황에서 FTA 확대는 피해서는 안 될 선택이기도 하다. 지난해 11월 22일 한·미 FTA 비준동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다만 FTA가 국가 전체적으로는 이익을 가져오더라도 어려움을 겪는 분야가 있게 마련이므로 충분한 보완장치가 마련돼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정부는 최대 피해 분야인 농·어업 분야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어려운 재정여건하에서도 최선을 다해 보완대책을 마련했다. 한·미 FTA로 인해 가장 피해가 큰 쇠고기의 협상 결과와 대책이 대표적이다. 쇠고기 관세는 40%에서 15년간 매년 2.7%포인트씩 인하된다. 바꿔 말하면 생산 및 유통 비용을 매년 2.7%포인트씩 낮춰간다면 경쟁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정부는 다양한 대책을 마련했다. 올해 새로 도입한 밭농업직불제 대상에 사료작물을 포함하는 등 사료작물 재배면적을 지난해 26만ha에서 올해 33만ha로 27% 늘린다. 2014년 이후에는 2010년의 두 배로 늘릴 계획이다. 또 해외농업개발을 통해 옥수수 등 사료작물 공급을 확대한다. 수입사료원료 무관세 적용 품목도 지난해 4개에서 올해 16개로 늘렸다.

 쇠고기 유통단계를 5단계에서 3단계로 줄여 현재 42.5%인 유통비용 비율을 크게 줄여갈 계획이다. 축산농가에 대한 소득세 공제 혜택도 늘리고, 면세유 등에 대한 부가가치세 영세율 적용도 10년간 유지한다. 아울러 생산성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기 위해 축사시설 현대화 지원도 지난해 1633억원에서 올해 4885억원으로 확대했다. 한·미 FTA를 새로운 기회로 활용하기 위한 인프라를 대폭 강화한다는 의미다.

 과거 우루과이라운드, 한·칠레 FTA 때 ‘우리 농업이 다 망한다’는 우려의 소리가 있었지만 결과는 어떠했는가. 기우에 불과했음이 드러났다. 2004년 한·칠레 FTA 체결 당시 크게 걱정했던 시설 포도와 키위는 오히려 생산량이 늘었다. 농·어업인과 정부, 지방자치단체가 힘을 합쳐 노력한 결과다.

 FTA는 위기인 동시에 기회다. 농·어업인과 관련 종사자 모두가 합심해 노력한다면 우리의 농·어업이 경쟁력 있고 선진화된 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12년은 한·미 FTA를 넘어 선진 농·어업을 실현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 믿는다.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