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광명성절 맞은 김정은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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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준택
전 국정원 3차장
건국대 국가정보학과 초빙교수

오늘은 김정일의 생일 ‘광명성절’이다. 김일성 생일인 ‘태양절’(4월 15일)과 함께 북한 최대 명절이다.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 김정은 입장에선 집권 후 처음으로 맞는 아버지의 생일인 셈이다. 북한 주민들은 오랜만에 쌀·옥수수 등을 조금 배급받을 것이다. 한때 술과 고기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옛날 이야기다. 경제가 파탄 지경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경제 문제는 한마디로 ‘3난(難)·3저(低)·3악(惡)’이다. 세 가지 어려움이 삼중으로 쌓여 있다. 첫째로 3난(三難)은 식량난·에너지난·외화난을 말한다. 주민을 먹여살릴 수 있는 기본적인 식량부터 부족한 것이다. 여기다 추위를 이기고 경제를 가동할 에너지도 태부족이다. 경제를 살릴 종잣돈 노릇을 할 외화도 부족하니 자력으로 발전을 시도할 여력이 없다.

 둘째로 3저(三低)는 노동의욕·국제경쟁력·기술수준의 낮음을 가리킨다. 북한은 식량난으로 제대로 가동이 되지는 않지만 배급제와 중앙통제식 경제체제를 운용해 일을 하나 안 하나 개인에게 돌아가는 것은 차이가 없다. 그러니 노동의욕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국제경쟁력을 확보할 수가 없고, 기술을 습득할 기회도 적다.

 셋째로 3악(三惡)은 생활환경, 제품의 질, 기계설비의 조악함을 일컫는다.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는 구조다. 2012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를 맞이해 김정은이 ‘불면불휴(不眠不休)’하면서 고심해도 경제난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북한에서 말하는 ‘인민 생활의 생명선’(2011년 신년 공동 사설)은 곧 식량문제 해결을 말한다. 현재 성인의 하루 배급량은 규정량인 700g의 절반 수준이다. 이는 식량농업기구(FAO)의 권장량 458g에도 못 미친다. 주민들에게는 뭐니 뭐니 해도 먹거리가 가장 중요하다. 식량난이 해결되면 나머지 ‘3·3·3’은 줄줄이 풀리게 된다. 방아 찧고 엉킨 머리를 얼레빗으로 빗고 난 다음 참빗으로 빗듯이 말이다.

 해결책은 무엇인가. 먼저 농지 소유권과 경작권을 분리해야 한다. 소유권은 지금처럼 국가와 협동단체가 가지되, 경작권은 농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개인 텃밭의 생산량이 협동농장의 생산량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남한의 선진 영농기술을 받아들여야 한다. 벼농사의 경우 다 자란 모를 촘촘히 심는 성묘밀식(成苗密植)이라는 ‘주체농법’에는 한계가 있다. 3.3㎡당 120~180주를 심으니 어찌 바람과 햇볕이 통하겠나. 그래서 병충해가 극심해 농사를 망치고 있다고 한다. 남한의 농법을 받아들인 평양 인근 협동농장에서 2배에 가까운 쌀을 수확한 성공사례를 ‘따라 배우기’ 하면 된다.

 우리 민족은 부지런하고 역동적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선수다. 동기부여만 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북한의 결심에 달렸다. 그런 변화의 날이 오면 남한은 물론, 미국과 일본 등 서방국가가 가만히 보고 있겠는가. 곡물을 비롯해 비료, 농약, 비닐 등 영농자재를 실은 차량과 선박이 개성과 남포항에 이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김일성이 생전에 그토록 염원했던 ‘이(쌀)밥에 비단 옷 입고 고깃국 먹는’ 유훈이 실현될 것이다.

 1992년 미국에선 걸프전을 승리로 이끈 현직 대통령 조지 H W 부시를 제치고 아칸소주 시골뜨기인 빌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당시 클린턴이 국민의 마음을 움직인 결정적 한마디는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였다. 김정은은 이 말 속에 살길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최준택 전 국정원 3차장 건국대 국가정보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