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유학, 엄마 동반 유학이냐 나홀로 유학이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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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 필리핀 연수를 다녀온 김동현군과 박일애씨 모자와, 혼자 미국 유학을 다녀 온 김민재군

조기유학을 생각해 본 엄마라면 ‘아이 혼자 보낼 것인가?’, ‘함께 갈 것인가?’를 두고 한번쯤 고민한 적이 있을 것이다. 아이 혼자 보내자니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까’, ‘게임 등 각종 유혹에 빠지지 않을까’하는 고민이 들고, 같이 가자니 비용이나 기러기 아빠 같은 문제들이 떠올라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동반유학을 다녀오거나 아이 홀로 보낸 학부모와 학생들의 경험담을 들어봤다.

엄마가 함께 공부하고 방과후는 문화향우 기회를

아들 김동현(서울 한남초 6)군과 함께 필리핀 어학연수를 다녀온 박일애(41·여·서울 용산구)씨는 “아이에게 일찍부터 영어 환경을 체험할 기회를 주고 싶었는데 너무 어린 시기에 부모와 떨어져 생활하면 영어공부보다 스트레스를 더 심하게 받을 것 같아 함께 가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던 동현이와 함께 필리핀으로 4개월씩 두 번 다녀왔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다른 엄마들은 아이들의 학습 관리에 신경을 썼다면 박씨는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영어 공부를 했다는 점이다. 박씨는 “엄마가 함께 현지에 머무는 것은 아이의 현지 적응력을 기르고 심리적 안정을 주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씨와 함께 비행기에 올랐던 대다수 엄마들은 어른도 소화하기 힘들 정도의 학업량을 안기며 아이들을 ‘관리’했다. 박씨는 “주변에서 보니 그런 아이들은 늘 지쳐있었고 영어 실력도 생각보다 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반대로 동현이에게 엄마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필리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유도했더니 영어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고 회상했다.

필리핀에 두 번 다녀온 이유도 첫 번째는 동현이의 영어 듣기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두 번째는 영어 말하기 실력을 키워주기 위해서였다. 박씨는 “듣기만 키워주자는 작은 목표로 갔기 때문에 수업이 끝나면 TV를 보거나 이웃 필리핀 친구 집에서 마음껏 놀도록 했다” 고 말했다.

동현이는 “엄마와 함께 영어 공부도 하고 대화도 나누면서 영어 공부를 하러 왔다는 느낌보다 다른 나라에서 엄마와 외국어로 말한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고 자랑했다. 이를 통해 미국에 대한 관심이 커진 동현이는 스스로 미국행을 결심했다. 1년 뒤 미국으로 홀로 유학을 1년간 다녀왔고 현재 영어실력은 물론, 학교 적응력도 우수해 한국의 학교생활도 잘하고 있다. 박씨는 “아이가 영어가 가능했기에 혼자 떠난 미국 유학에서도 적응을 잘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가능하면 단기 어학연수나 1년짜리 유학을 엄마가 자녀와 함께 떠나면 학업 스트레스가 아닌 문화와 언어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엄마와 함께 떠나는 유학에서도 부적응 사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엄마가 관리에만 집중해 하루 10시간 이상 아이에게 학업 스트레스를 주거나 아이가 현지인들과 만날 기회를 줄이고 엄마와 생활하는 경우다.

박씨는 “부모·자녀 동반 유학은, 엄마가 생활관리를 직접 하기 때문에 아이가 일탈하는 가능성이 작은 점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업 외 시간은 문화를 즐기거나 현지인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교육에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꿈 확실한 아이라면 영어와 문화로 동기부여 팍팍

박씨와 달리 이혜윤(38·여·인천시 서구)씨는 아들 김민재(14·홈스쿨링)군을 5학년 때 미국으로 홀로 유학 보냈다. 민재군의 여동생 역시 미국에서 홀로 유학 중이다. 이씨는 “아이들의 꿈과 목표가 확실해 홀로 유학을 보냈다” 고 말했다. “아이들의 선택을 존중해 유학을 보냈더니 만족도는 물론, 다녀와서도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 떠올렸다.

특히 비행기 조종사가 꿈인 김군은 관제탑에서 근무를 하는 미국 호스트 가정의 외국인 보호자에게서 많은 얘기를 들은 것이 도움이 됐다. 민재군은 “주말이면 호스트 보호자와 항공 관련 동호회에 참가해 경비행기도 타보고 파일럿에 대한 이야기도 들으며 꿈을 키웠다”고 전했다. 이런 경험은 김군이 미국에 도착한 후 방황하지 않고 뚜렷한 목표를 설정하는데 도움이 됐다. 김군은 “한국에서도 항공 동호회를 직접 찾아 다니며 활동 중”이라며 “미국에서처럼 꿈을 위해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이 생겨 자신감도 넘친다” 고 말했다.

김군은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 국제학교에 입학했지만, 기숙사 생활로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아 가족이 함께 고민해 내린 결정이다. 이씨는 “2년간 미국에서 혼자 보냈고 이제 사춘기에 접어들어 가족의 유대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홈스쿨링을 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이어 “홀로 유학을 떠난 아이들 중 목표가 확실하지 않은 아이들은 수업시간에도 시간 때우기에 급급한 모습을 봤다” 고 말했다. “내 아이가 어떤 성향과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유학을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현재 김군은 영어는 원서를 자유롭게 읽고 원어민과 대화에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의 수준이다. 동현군과 민재군에게 영어하면 떠오르는 첫 이미지가 무엇이냐고 묻자 서로 마주보더니 동시에 “재밌다”라고 답했다.

< 김소엽 기자 lumen@joongang.co.kr / 사진=김경록 기자 >

유학·어학연수 전후에 점검할 점은

선배 엄마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자
주변을 살펴보면 다양한 국가에 아이들을 보낸 경험이 있는 엄마들이 있다. 선배 엄마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자. 단순히 인터넷에서 떠다니는 정보는 현실과 다른 경우가 있다. 박일애씨 역시 처음 필리핀에 도착했을 때 현지 상황과 한국에서 알아본 내용이 달라 당황한 경험이 있어 두 번째는 확실하게 준비하고 출발했다.
 
유학·어학연수 너무 어릴 땐, 2년 이상 보내지 말자
초등학교 4학년 이상부터 보내는 것이 효과적이다.너무 어린 아이들은 모국어와의 혼동이 있을 수 있다. 또, 한참 가족과의 유대관계를 맺어야 할 청소년기에 너무 오래 떨어져 있으면 가족 간의 유대를 맺기 어려워진다. 이혜윤씨도 “사춘기에 아이들과 부모가 떨어져 있으면 영어 보다 더 큰 것을 잃을 수도 있다. 필요하다면 1년에서 2년이 가장 적정하다”고 조언했다.

어떤 가정에 우리 아이가 가는지 확인 하자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외국 현지 호스트 가정에서소외되고 있다. 박일애씨와 이혜윤씨 모두 “중산층이상의 미국인 가정인지 확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호스트 가정을 하는 경우 난방이나 식사, 생활습관 같은 중요한 부분을 관리하지 않아 아이들이 외국에서 고생하는 경우가 있다.
 
유학·어학연수 후 레벨테스트 절대 하지 마라
유학·어학연수를 다녀오면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커진 만큼 학교나 주위사람들의 기대치도 높아진다. 하지만, 레벨테스트로 실력을 수치화 하는 순간, 기대치보다 낮은 점수를 받는 아이들은 자신감마저 잃는 경우가 많다. 이혜윤씨는 “시험과 언어는 다르다. 유학후 사후관리는 영어 공부의 연장선이 아닌 자신감과 정서 관리”라고 말했다. “레벨테스트가 주관적인 면이 있어 성적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아이가 영어로 읽고 쓰고 말하는데 문제가 없다면 그것으로 만족하자”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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