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집값, 높은 대출 문턱…구슬픈 허니문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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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기자]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

지난 주말 지방에서 있었던 결혼식에서 신랑이 신부를 위해 바치는 축가의 한 소절이다.

경건하던 결혼식장에서 구성진 트로트 가락이 울려 퍼지면서 덕분에 식장은 흥겨운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 노랫말이 마냥 신나게만 들리지 않는 것은 왜일까.

과연 요즘 사랑이 ‘무조건'이던가? 조건없이 사랑하고 결혼해야 할 터인데 계산기를 먼저 두드려 봐야 하는 시대이다.

혼수, 예단, 예물 등의 결혼 비용부터 신혼집 마련까지 들어가는 돈이 한두 푼이 아니기 때문. 가장 큰 이유는 비싼 집값 때문이다.

얼마 전 방영된 결혼과 동시에 빚을 지고 가난해진다는 '허니문푸어' 방송 프로그램이 2030세대의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허니문푸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지만 그래도 결혼식은 늘상 주말 스케쥴을 차지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 주말 서울과 지방에서 지인의 결혼식이 두군데나 있어 꽤나 바쁜 주말을 보냈다.

서울과 지방의 먼 거리만큼이나 결혼식장 분위기도, 신랑 신부의 사연도 꽤나 거리감이 느껴졌다.

'사랑은 무조건이야'를 외치던 신랑은 지방 중소도시에서 신혼살림을 차리게 돼 6000만원에 소형 아파트 전세를 얻었다고 한다.

직장생활을 먼저 시작한 신부가 모아놓은 돈과 신랑이 일부 대출을 받아 부모에게 손 안 벌리고 첫 출발은 한 셈. 물론 결혼과 동시에 빚이 생겼다.

반면 서울에서 결혼한 지인의 경우 6000만원으로는 아파트 전세는 꿈도 꿀 수가 없었다. 부모님의 지원과 대출 등으로 1억8000만원 소형 아파트 전세를 겨우 얻었다고 한다.

역시 빚을 안고 시작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은 편에 속한다.

모아놓은 돈도 별로 없고, 부모님의 든든한 지원도 기대하기 힘들었던 한 지인은 4월 결혼을 앞두고 장인, 장모 몰래 대출을 받아야만 했다. 행여나 신부 부모님이 반대라도 할까 싶어 궁여지책으로 내린 결론.

신혼부부 전세대출ㆍ특별공급 문턱 높아

“이자가 연 4%대로 저리인 신혼부부전세자금대출 6000만원을 받아 강북에 9000만원짜리 빌라 전세를 얻었다”면서 “예전에는 청첩장이나 예식장 계약서 등만 첨부하면 가능했다던데 신혼부부전세자금대출도 악용하는 사례가 많아서인지 혼인신고가 돼 있어야 받을 수 있게 됐다”면서 아쉬움을 전했다.

결혼하고도 혼인신고는 최대한 늦게 하는 것이 요즘 트렌드(?)라는데 이들은 대출을 위한 꼼수 덕에 혼인신고를 미리 해 벌써 법적으로 부부가 되었다.

신혼부부전세자금대출은 결혼 예정일 2개월 전부터 신청이 가능하고 최대 8000만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연소득이 3500만원(부부개별)이 넘을 경우에는 신청을 할 수가 없다.

신혼부부 주택특별공급 혜택도 예비 신혼부부들에겐 문턱이 높다. 보금자리주택, 장기전세주택 등 신혼부부 특별공급을 받으려면 아이가 있거나 임신 중이어야 하기 때문.

사실상 예비 신혼부부들에게는 해당되는 사항은 별로 없는 셈이다.

학자금을 채 갚기도 전에 버거운 집값을 부담해야 하는 20~30대. 설레고 아름다운 청춘이 아닌 연애를 포기하고 결혼을 포기하고 출산을 포기하는 ‘삼포세대’가 되었다.

비싼 집값 때문에 결혼과 동시에 빚을 떠안아야 하는 예비 신혼부부들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과 주택정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랑은 무조건'이라는 노랫말이 더 이상 구슬프게 들리지 않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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