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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배달소년, 대기업 사원 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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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10일 경남의 창원폴리텍대학 실습실에서 표성민(28)씨가 컴퓨터제어 선반에 들어가는 회로 제작 연습을 하고 있다. [창원폴리텍대학 제공]

요즘 경남 창원의 폴리텍대학 실습실엔 1m80㎝가 넘는 키에 커다란 덩치, 맘 좋은 얼굴을 가진 ‘큰형님’이 있다. 기업 위탁교육생 중 나이가 가장 많은 표성민(28)씨 얘기다.

 항상 웃는 얼굴의 표씨는 지난해 말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 입사에 성공했다. 현대기아차그룹 계열로 항공기와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현대위아다. 그래서 그를 처음 본 사람들은 ‘아무 걱정 없이 살아왔나 보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결코 순탄치 않은 삶이었다. 부산 태생의 표씨는 중 3년이던 1999년부터 혼자 살아야 했다.

 공무원이던 아버지가 퇴직 후 차린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다. 살던 집마저 빚에 넘어가자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16살의 표씨는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친구들이 고교 진학을 준비할 때 그는 월세 20만원짜리 봉천동 여관방에서 홀로 지내며 돈벌이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첫 직장(컴퓨터 판매 회사)은 1년 만에 부도가 났다. 밀린 월급도 받지 못했다. 그 뒤 중국집 배달에서 퀵서비스, 공사판 막노동까지 몸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체육관에서 먹고 자며 헬스트레이너와 격투기 사범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20살도 안 된 나이에 어떻게 그 생활을 버텨냈나 싶어요.”

 무엇보다 가족과 떨어져 산다는 게 힘들었다. 아버지는 연락이 끊겼고 허리가 아픈 어머니는 큰 수술을 세 차례나 받으며 지방 병원을 전전했다. 두 살 위의 형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돈벌이에 나섰다. 표씨는 ‘이렇게 살아서 미래가 있을까’라는 고민에 3년 동안 불면증에 시달렸다. 돈이 없어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다. 격투기 사범까지 했던 터라 주먹세계에서 영입 제안도 여러 번 받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희망’을 찾았다. 바로 기술이었다. 2005년 경기도의 한 판금프레스 업체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중졸 학력인 탓에 현역 입대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우연히 병역도 이행하고 돈도 벌 수 있는 산업기능요원에 지원한 것이다. 그때 처음 만진 선반이 ‘천생연분’이었다.

 의무근무기간을 마친 표씨는 10년간의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2009년 창원으로 내려갔다. 어머니와 형이 창원에 살고 있는 데다 창원 폴리텍대학(학장 강지연)에 도전하기 위해서였다. 하루 8시간씩 독학으로 공부해 고교 검정고시를 통과했고 2010년 목표하던 대학에 입학했다. 장학금 덕에 여유가 생기면서 어머니·형과 다시 모여 산 것도 이때부터다. 그는 봉사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했고 총학생회장에까지 뽑혔다. 그러면서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직접 손을 대지 않고도 선반을 조작할 수 있는 컴퓨터 제어 선반 기술에 빠져들었다. 그는 폴리텍대학과 현대위아를 오가는 5개월간의 교육과정을 마치면 정식으로 입사한다. 표씨에겐 새로운 꿈이 생겼다. “ 최고 기술인인 대한민국 명장이 꼭 되고야 말 겁니다.”

이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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