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골이 자전거 타요” 박물관은 살아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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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정양이 페달을 밟자 해골도 똑같이 움직였다. 자전거 탈 때의 뼈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는 경기도어린이박물관 체험 코너.

“물 뿌리기가 제일 재밌어요~!” 장난감 물레방아를 돌리던 서혜정(5)양이 환하게 웃으며 외친다. 엄마 김진현(35)씨는 딸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고 한시름 놓는다.

 혜정이네 집은 경기도 광명이다. 버스로 용인에 있는 경기도어린이박물관까지 오는 데 2시간 남짓 걸렸다. 하지만 혜정이가 물레방아에 관심을 가지며 즐거워하자, 김씨의 피곤함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아직 어리긴 하지만, 여러 번 체험하다 보면 물레방아의 과학적인 원리까지 배우는 거 같아요.”

 요즘 김씨는 딸을 데리고 박물관을 자주 찾는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배울 만한 것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보려고 한다. 한때 유행하던 키즈카페는 비싼 데다 위생상태가 의심스러워 잘 찾지 않는다. 대신 국공립 박물관이나 믿을 만한 단체가 하는 체험 전시, 민속촌 등을 숱하게 다녔다. 이미 초등학생 학부모가 된 주변 사람들은 박물관·과학관·전시회 등을 최대한 활용하면 일종의 ‘선행학습’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조언했다.

 혜정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것은 2년 뒤다. 하지만 “먼 얘기가 아니다”라고 김씨는 말한다. “요즘 애들은 빨라요. 우리 혜정이도 벌써 한글을 다 뗐어요. 우리 때랑 다르게 외동 아이가 많으니까 엄마들도 더 많이 누리게 해주고 싶은 거지요.”

 김씨의 교육관은 뚜렷하다. 공부도 놀이처럼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다. 박물관 관람도 마찬가지다. 김씨는 혜정이가 나들이를 하듯 즐길 수 있는 박물관이 좋다. 그래서 경기도어린이박물관을 발견했을 때 월척이라도 낚은 기분이 들었다.

 혜정이가 인체 구조와 기능을 테마로 잡은 전시실로 뛰어들었다. 거대한 심장이 방 한복판에 우뚝 솟아 있었다. 여러 다발의 핏줄이 심장에서 가지처럼 뻗어 나와 천장을 뒤덮고 있었다. 혜정이가 엄마와 함께 심장 앞에 놓인 러닝머신 위를 걸었다. 핏줄에 부착된 꼬마 전구가 마치 혈관 속을 흐르는 피처럼 줄지어 반짝였다. 빨리 달릴수록 반짝임도 빨라졌다.

“혜정아, 저게 그림책에서 본 ‘물레방아’야.” 엄마 김진현씨의 설명에 혜정이의 눈이 호기심으로 가득찼다.

 김씨가 문득 생각난 듯이 물었다. “혜정아, 어린이집에서 뭘 먹으면 저 핏줄이 막힌다고 했지?” 혜정이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빨간색 음식. 피자 많이 먹으면 핏줄이 막혀요.” 김씨는 어린이집에서 동맥경화도 가르치더라고 귀띔했다. “평소 책이나 그림으로만 보던 것들을 이렇게 직접 눈으로 보니 학습효과도 크고 재미있어 하는 거 같아요.”

 혜정이 주위로 덩치가 제법 큰 초등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아이들은 러닝머신을 신나게 달리더니, 해골과 나란히 자전거를 타며 뼈의 움직임을 살피는 코너로 옮겨갔다. 이곳에선 재활용 재료를 이용해 공작을 즐길 수 있는 ‘에코 아틀리에’, 운동 과학의 원리를 탐구할 수 있는 ‘튼튼 놀이터’, 물로 배와 물레방아를 움직여보는 ‘한강과 물’ 등 다양한 전시 공간이 마련돼 있다. 아이들이 단순히 전시물을 보는 것뿐 아니라 직접 작동하고 체험하면서 원리를 익힐 수 있게 돼 있다.

 “요새 애들은 집중력을 강화한다고 단전호흡 비슷한 ‘뇌교육’도 받아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박물관에서 놀면서 배운 지식이 아이에게도 훨씬 오랫동안 남을 텐데 말이에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것 저것 만져보는 혜정이를 바라보는 김씨의 표정에선 확신이 엿보였다.

글=나원정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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