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표류 ‘브레인시티’ 주민들 빚만 키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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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경기도 평택시 도일동에 사는 박모(56)씨는 요즘 속이 새카맣게 타 들어간다. 부동산 경기침체 탓에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농경지와 임야 등 1만 2000여㎡의 땅값이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있는 데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어서다. 평택시가 2007년부터 추진한 첨단복합산업단지인 일명 ‘브레인시티’ 조성사업지구에 편입돼 재산권 행사가 제한된 탓이다.

 그사이 땅값은 시세기준 3.3㎡당 평균 150만원대에서 100만~120만원대로 떨어졌다. 박씨는 “올해 사업이 본격화되지 않고 토지보상이 또다시 미뤄지면 땅값이 반 토막 날 수도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업지구 내 농경지 4000여㎡를 갖고 있는 김모(45)씨도 “2년 전 토지보상을 믿고 은행에서 2억원을 대출받았는데 보상이 미뤄지면서 빚만 불어나고 있다”며 “나처럼 빚에 허덕이는 주민이 수백 명”이라고 주장했다.

 평택 브레인시티 조성사업이 5년째 표류하면서 주민들의 피해가 늘고 있다. 브레인시티는 2007년 6월 평택시가 주한 미군기지 이전에 발맞춰 평택의 미래 프로젝트로 정해 추진했다. 대상 면적만 서울 여의도 면적의 1.7배인 482만4900여㎡로 평택시 13개 동 가운데 5개 동이 걸쳐 있다.

 지구지정과 사업 승인·고시 등 행정절차는 2010년 4월 모두 끝났다. 그러나 토지보상은 여태 착수되지 못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민간사업자와 평택시 간 자금확보 갈등 때문이다. 이 사업은 평택시와 민간사업자가 공동출자해 만든 특수목적법인(SPC)인 브레인시티개발(주)이 맡고 있다. 민간사업자는 사업을 빨리 추진하자는 입장이지만 평택시는 토지보상비 등 자금확보가 우선이라며 맞서고 있다.

 이렇게 사업이 지연되면서 주민들은 반발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주민 1400여 명으로 구성된 브레인시티 농지대책위(위원장 이동인)와 브레인시티 주민보상협의회(회장 김준수)는 9일 “평택시는 즉각 토지보상에 들어가든지, 아니면 지구를 해제해 주민 재산을 원상 복구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지구지정이 해제되면 시에 보상지연과 개발제한에 따른 피해에 대해 물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브레인시티에 특정 대학 유치를 기다려온 평택시 교육발전협의회(회장 이주상)와 학부모들은 ‘브레인시티 내 대학 유치촉구 시민위원회’를 구성해 “하루빨리 사업을 정상화해 대학을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주상 회장은 “평택의 인재를 더 이상 다른 지역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대학 유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손종천 평택시 산업환경국장은 “주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주민과 시의회, 민간사업자 의견을 수렴 중”이라고 말했다.

◆브레인시티(두뇌도시)=첨단지식·산업단지와 친환경 주거공간, 대학이 어우러지는 미래형 단지로 도시의 핵심 기능을 담당한다는 뜻에서 브레인시티란 이름을 붙였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북쪽으로 500㎞ 정도 떨어진 오울루시의 테크노폴리스를 모델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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