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연인] '아이즈 와이드 셧'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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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 최후의 절대군주.천재.완벽주의자.기교주의자, 전대미문의 테크니션. 스탠리 큐브릭 감독 앞에 따라붙는 수사들이다.

우리는 그가 모든 장르를 섭렵했다고 여기지만 정작 스탠리 큐브릭의 작품은〈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닥터 스트레인지 러브〉〈시계태엽오렌지〉등 겨우 13편에 불과하다.

이 작품이 유작이니 그 뒤를 이을 영화는 없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들은 출연한 배우보다도 큐브릭 자체를 제대로 이해해야 작품의 의미가 찾아지는 독특한 경우이다.

〈아이즈 와이드 셧〉은 아르트루 쉬닛츨러의 소설 '드림 스토리' 가 원작 (국내엔 '꿈의 노벨로' 로 번역) 인데 의사였던 쉬닛츨러는 같은 시대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영향을 받은 듯하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이 소설의 뼈대가 되었음은 누구나 쉽게 알수 있는데 스탠리 큐브릭은 이 원작을 토대로 사랑과 질투 그리고 섹스와 죽음을 특유의 상징적 그래픽으로 접근했다.

아름다운 아내 엘리스(니콜 키드만) 와 유능한 의사 빌(톰 크루즈) . 겉으로 보기에 이들은 조금의 문제도 없는, 최상으로 느껴지는 가족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아내는 정숙하고 남편은 성실하며 7살 되는 딸은 유순하고 보석 같이 예쁘다. 센트럴파크의 상류층 아파트에서 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부엌이나 침실의 분위기는 우아하고 따뜻하고 정겹다. 주고받는 말은 부드러우며 인간적이다. 게다가 크리스마스 무렵이라 여기저기에서 모든것이 반짝거리는 때다.

빌의 환자이자 친구인 백만장자가 주최하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그들이 성장을 하고 그들의 보금자리를 나서는 순간까지만 해도 카메라는 그들의 아름답고 기품있어 보이기까지 하는 가정생활의 단면들을 잡는다.

파티에서 삼페인에 취한 엘리스는 접근해오는 남성과 춤을 추면서도 정숙한 여자답게 유혹을 물리치고 빌 또한 늘씬한 두 모델에게 유혹을 받지만 또 다른 상황이 발생해 진전되지는 않는다.

그러다가 다음날 밤, 빌은 아름다운 엘리스로부터 신경질적인 고백을 듣게 된다.

한때 상황만 된다면 모든 것을, 딸까지도 버릴 수 있을 만큼 한눈에 반해버린 남자를 만났었다는. 빈틈없다고 느끼던 이들이 정신적으로 깨어지는 순간이다.

빌의 한밤의 오디세이적 방황은 이로부터 시작된다. 정숙하다고 믿었던 엘리스의 고백은 빌을 엉뚱한 상상에 몰두하게 하여 괴롭힌다.

스탠리 큐브릭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인간은 욕망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 없다는 것?

통제되지 않는 것을 통제하려고 했을 경우 마침내 욕망이 인간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

겉보기에 말짱했던 그들의 결혼생활에 대한 신의가 위기에 처한 후 연쇄작용처럼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은 불안하고 뒤틀려 있다.

차갑고 절망스러우며 세기말적이다. 어떤 강박이 금방 터져버릴 것처럼 음험하기도 하다.

이 긴장감은 빌의 참회의 눈물과 엘리스의 현명한 대처로 낙관적으로 매듭되지만 그것이 외려 억지스러울만큼 영화관을 나올때는 얼굴 위에 내려진 마스크의 존재가 느껴져 섬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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