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의 금요일 새벽 4시] “나 책받침 하나만 만들어주라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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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면

◆아저씨와 오빠의 다른 점, ‘애정남’이 이미 알려줬다지만 저만의 기준은 따로 생겼습니다. 바로 배우 소피 마르소에 대한 추억을 논할 수 있느냐 아니냐라는 겁니다. 2주 전 j의 회의 광경을 보자면 그렇습니다. 여느 때처럼 ‘인터뷰 재미있었냐’ ‘주제가 뭐였냐’는 질문은 사라졌습니다. 대신 80년대로 돌아가 ‘책받침 여왕’을 두고 수다 한 판이 벌어졌죠. 특히 남자들, 백성호·이세영·김호준 기자가 하나로 통했습니다. 그들 모두 ‘그때 그 시절’의 중학생들이었으니까요. 김 기자는 “사진 코팅하는 건 수준이 낮은 거죠. 전 친구들한테 그림으로 그려주면서 용돈도 벌었어요”라며 자랑까지 하더라고요.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소피 마르소와 미모를 다투던 피비 케이츠와 브룩 실즈로 대화가 이어지네요. 셋 중 누가 더 ‘예쁘다’에서 ‘예뻤다’로 시제만 바뀌었을 뿐, 토론 수준은 30년 전과 다를 바 없어 보였습니다. 인터뷰 뒤에 달린 ‘책받침 여왕들 기사’는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어찌 됐건 2주일이 흘렀고, 실제 지면을 제작하는 분주한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소피 마르소 사진을 본 팀원들이 모니터 앞으로 몰려듭니다. 그때, 뒤늦게 나타난 백성호 선배가 김호준 기자에게 새로운 주문을 하네요. “나 책받침 하나만 만들어주라.” <이도은>

◆궁금했죠. 가수 이상은의 종교는 뭘까. 이유가 있어요. 그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길을 찾는 구도자’란 느낌을 강하게 받았거든요. 인터뷰에서 슬쩍 물었습니다. “혹시 종교가 있나요?” 그는 “크리스천”이라고 답했습니다. 다소 의외였죠. 그의 멜로디와 가사에는 보헤미안적인 느낌이 강하게 묻어나기 때문입니다. 방랑자라고 할까, 집시라고 할까, 여하튼 그런 이미지 말입니다.

 그는 이리저리 많이 찾았더군요. “한때는 비교종교학에 빠진 적도 있습니다. 모든 게 궁금했죠. 이것도 읽어보고, 저것도 읽어보고. 바가다드기타(힌두교 경전)도 읽어보고 말이죠. 그는 “20대에는 자만에 빠졌었다”, 30대 중반에는 “편안한 느낌이 밀려왔다. 전에는 신이 멀리 하늘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내 곁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고백도 들려주었습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이상은은 ‘극성파 크리스천’은 아니더군요. ‘묵상파 크리스천’에 더 가까웠죠. 주일에도 인터넷을 통해 예배를 보더군요. 그래서 물었습니다. “당신은 음악이란 길을 가는 구도자인가요?” 그가 답했습니다. “그 말은 너무 무섭네요. 너무 세요. 음…, 구도자는 구원을 향해 가는 건가요? 음…, 그렇다면 구도자가 맞네요. 그래도 참, 무섭고 두려운 말이네요.” 인터뷰를 마치고 생각했죠. 삶이란 무섭고 두려운 길에서 가수 이상은의 노래가 사람들을 더 편하게 해준다면 좋겠다. 그럼, 참 좋겠다. <백성호>

◆훌륭한 모델은 카메라 앞에서 자기를 표현하는 것에 어색하지 않고, 사진기자의 의도를 빨리 이해합니다. 이런 면에서 쎌바이오텍 정명준 대표는 정말 훌륭한 모델이었습니다. ‘이런 건 처음인데…’를 되뇌면서도 자신만만하고 도도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어색함이 없었습니다. 구구절절 동작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손을…’ ‘얼굴을…’ 하는 주어만 듣고도 바로 저의 의도대로 움직여 주었습니다. 이런 분이 최고의 모델이라면, 최고의 사진기자는 족집게 같이 이야기의 핵심을 짚고, 어떤 열악한 현장 상황도 뛰어난 순발력으로 극복하는 사람이겠죠. 그런데 이날 저의 사진기자로서의 자질은 한마디로 ‘능력 없음’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먼저 이야기의 핵심 파악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시작이 이러면 사진 구성은 자연히 명쾌해질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아둔한 순발력은 해가 지고 밤이 되도록 계속된 촬영현장을 함께 지키며 도와주던 주변사람들마저 지치게 했습니다. 뺨을 타고 흐르는 진땀을 닦으며 “OK, 고생하셨습니다!”를 외치며 주변을 둘러봤습니다. 이소아 기자가 눈을 흘기며 쏘아붙입니다. “선배 별명이 왜 ‘두 시간’인지 제 눈으로 확인했네요!” <박종근>

j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사람신문 ‘제이’ 82호
팀장 : 이은주 취재 : 백성호 · 이도은 · 이소아 기자 사진 : 박종근 차장
편집·디자인 : 이세영 · 김호준 기자 , 최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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