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현장] 서울시도 도입하려는 주민참여예산회의 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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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서울 서대문구청에 주민참여예산위원들이 모여 지난해 활동을 평가하고 올해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탁자 위엔 문제점·제언들이 쓰인 메모지가 가득하다. [김성룡 기자]

지난 12일 오후 7시 서울 서대문구청 3층 기획상황실에 주민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이들은 주민참여예산위원들로 올해 첫 공식 모임을 갖는 것이었다. 지난해 활동을 평가하고 올해 예산 편성을 준비하기 위한 자리였다. 출석 체크를 하니 위원 29명 중 22명이 참석했다. 위원회는 동별 대표와 공모 위원으로 구성된다.

 ‘예산학교’ ‘동별 지역회의’ ‘주민위원회’ 등 3개 주제를 정하고 세 그룹으로 나눠 문제점과 제안을 메모지에 적은 뒤 커다란 종이 위에 붙였다.

 종이판은 금세 메모지로 뒤덮였다. “예산학교의 교재는 어려웠지만 교육 내용은 쉬웠다. 균형을 맞춰야 한다”(장미선·37), “예산학교에서 편성을 실제처럼 해보는 실습시간이 있어야 한다”(이옥주·41), “특정 단체 회원이 동원된 지역회의가 있었는데, 올해는 이런 일을 막아야 한다”(차승연·33) 등의 내용이었다.

 서대문구(문석진 구청장)는 지난해부터 예산(일반액 2480억원)의 1%인 24억원을 주민 손에 맡기는 주민참여예산제를 실시하고 있다. 주민들이 직접 사업을 검토하고 예산을 배정하는 것이다.

 지난해 6월 지방재정법이 개정되면서 서울 25개 구청 중 22개 구에서 주민참여예산 조례를 만들었다. 하지만 대부분 조례만 있을 뿐 실질적인 활동은 거의 없다. 서대문구가 돋보이는 이유다.

 처음부터 활동이 활발했던 건 아니다. 취지는 좋았지만 주민 손으로 예산을 직접 짜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공무원도, 주민도 모두 처음 해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구청은 조례 제정 직후 제도 취지를 설명하는 ‘예산학교’를 운영했다. 그러나 주민 참여가 저조했다. 주민위원인 박도영(37·여)씨는 “처음엔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해볼까 해서 참가한 것”이라며 “하지만 예산학교에 참여하면서 예산 편성의 중요성을 깨닫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대문구 주민위원회는 6개월 활동 끝에 지난해 말 주민참여예산 12억5000만원을 40개 사업에 편성했다. 배정된 예산의 절반만 사용했다. 앞서 이들은 동별 회의에서 올라온 사업 160건의 필요성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을 일일이 방문했다. 또 수시로 모임을 열었고, 밤샘 토론도 마다하지 않았다. 최종 결론은 이틀에 걸쳐 열린 아홉 시간의 마라톤 회의 끝에 내려졌다. 파손된 채 방치된 주택가의 계단 보수에 600만원을 배정하는 등 시급하다고 판단한 사업이 꼽혔다.

 주민위원 안정호(42)씨는 “주어진 예산을 다 쓰기보다는 필요 없는 사업은 아예 시작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배정 예산의 절반만 사용했다”며 “예산 편성 활동을 하면서 ‘이기적인 사업’이 얼마나 많은지를 실감했다”고 말했다.

 주민참여예산제는 올해 서울시 차원에서도 도입될 전망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최근 서울시 중기시정계획을 발표하면서 서대문구와 같은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김상한 서울시 예산과장은 “2~3월 중에 조례안을 만들어 시의회에 제출할 계획”이라며 “인터넷으로 사업 아이디어를 실시간 접수하는 등 예산 편성 방식과 규모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참여예산제가 도입되면 일반 시민도 서울시 예산(약 21조7000억원) 편성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전영선 기자

2011년 서대문구 주민참여예산제 현황 자료 : 서대문구

- 위원회 구성 : 29명(동별 대표 14명, 공모 위원 15명)

- 주요 활동 : 동별 지역회의 제시 사업(160건) 중 우선순위 결정 등

- 예산 규모 : 구 예산의 1%인 24억원(실사용 예산 : 12억5000만원)

- 사용처 : 극동 아파트 우회전 진입로 보도 블록 개선(280만원) 등 40개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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