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금융감독 당국에 ‘통신 조회권’ 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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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강병호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

범죄로 인해 얻는 기대이익이 적발돼 치러야 할 대가보다 클 경우 범죄는 증가하게 마련이다. 한국 증권시장에서 주가 조작 등 불공정거래 행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 ‘자본시장법’은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조치를 사후적 제재인 형사처벌 위주로 규정하고 있으며 감독 당국의 행정 제재는 경미한 수준이다. 감독 당국이 불공정거래 행위를 적발해도 조치할 수 있는 수단은 검찰 고발, 수사기관 통보 등 형사처벌 절차와 경고·주의 등 가벼운 행정 제재로 한정되고 있다.

 증시의 불공정거래를 근절하기 위해선 불법행위의 유형을 보다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처벌도 크게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형사적 제재에 더해 부당하게 얻은 재산상의 이익이 철저히 환수될 수 있도록 과징금 등 행정적 제재를 병행해야 할 것이다. 또 불공정거래로 인한 손해액에 대해 반드시 배상이 이뤄지게 하여 불공정거래로 얻는 기대이익보다 기대손실이 월등히 크다는 인식을 시장에 심어 줘야 한다.

 미국의 증권관리위원회(SEC)는 조사 및 제재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민사제재금, 부당이득 반환명령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다. 내부자거래 등에 대한 민사제재금의 경우 증권업 종사자에 대해서는 SEC가 직접 징수하며, 일반인에 대해서는 SEC가 법원에 청구해 부과가 가능하다. 일본의 증권거래감시위원회는 시세 조종, 내부자 거래 등에 대해 과징금제도를 도입하고 최근에는 5% 보고 위반으로 동 제도를 확대했다.

 이에 비해 한국에선 공시 위반을 제외하고는 과징금 부과가 불가능하다. 특히 증권시장에서 특정인의 불공정거래 행위가 진행되고 있을 경우 이를 조기에 차단할 장치가 없다. 결국 불법 행위가 종료되고 난 다음에야 단속함으로써 불공정거래를 사전에 예방하기에는 크게 미흡하다. 미국의 SEC는 불공정거래 행위가 포착되면 곧바로 법원에 금지명령을 청구할 수 있다. 영국·홍콩·호주 등 영미법 국가들과 일본도 이와 유사한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한국은 이들 국가와 달리 법원을 통한 금지명령제도가 인정되지 않고 있으며, 검사 대상 기관이나 그 임직원이 아닌 이상 불공정거래 행위의 중지 및 시정 조치도 불가능하다.

 최근 미국·영국·일본 등의 증권감독기구는 소환장과 영장에 의해 통화 기록 확보가 가능한 통화기록조회제도를 도입했고 필요 시 법원 영장을 통한 압수·수색 등 강제조사도 가능하다.

한국은 증권선물위원회가 금융감독원에 임의조사권을 위탁하고, 압수·수색 등을 할 수 있는 강제조사권은 금융위 소속 공무원을 지정해 수행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임의조사권은 구속력이 약해 위반혐의자가 조사에 응하지 않아도 이를 효과적으로 강제할 권한이 없다. 금융위의 강제조사권도 인신을 구속할 수 있는 일반 수사권과 달리 구속력이 약해 실제로 거의 이용되지 않고 있다.

 우리의 법체계상 이와 같은 제도를 한꺼번에 도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불공정거래에 대한 과징금제도나 조사의 실효성을 위한 통화기록조회제도 등은 서둘러 도입할 필요가 있다. 특히 최근 휴대전화·e-메일 및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이용한 불공정거래가 증가하고 있어 이의 혐의 입증에 필수적인 통신사실조회권을 감독 당국에 부여하는 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강병호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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