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가슴에 묻고 불러보지 못한 아버지 … 61년 만에 돌아오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20일 민영학 일병 전사 신원확인 통지서를 받고 눈물을 보이고 있는 아들 민완식씨. [연합뉴스]

가슴에만 묻어 놓고 평생 불러보지 못한 ‘아버지’. 머리에 이미 서리가 내린 60대 아들은 끝내 아버지를 부르지 못했다. 소리쳐 불러보고 싶었지만 목 안에서만 맴돌 뿐이었다. 대신 애써 참았던 울음만 터져 나왔다.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경북 의성에서 전사한 고 민영학 일병(사망 당시 23세)이 61년 만인 20일 아들 민완식(64·춘천시 시청길)씨 품으로 돌아왔다. 육군 쌍용부대 박선우 부대장은 이날 민씨의 집을 찾아 국방부 장관 명의의 신원확인 통지서와 위로패를 전달하고 유족을 위로했다. 위로패를 담은 상자에는 탄피 3개와 끝이 갈라진 플라스틱 숟가락 1개, 군복 단추 2개 등의 유품과 유해를 옮길 때 관을 감쌌던 태극기도 있었다. 이날 신원확인 통지서 전달 자리에는 민 일병의 막내 동생 영국(73)씨, 손자 병철(36)씨도 함께 했다.

 설을 앞두고 꿈속에서 그리던 아버지의 신원확인 통지서를 받은 민씨는 기쁨과 설움 등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민씨는 “두 살배기 때 생이별을 한 탓에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며 “휴가 나오신 아버지가 전쟁이 발발해 부대복귀 명령을 받고 급히 집을 떠나시면서 잠깐 나를 안아보신 것이 아버지와 마지막이었다는 말을 어머니께 전해 들었다”고 회상했다.

 1949년 입대해 6사단 19연대에서 복무한 민 일병은 1950년 8월 24일 고지 쟁탈전이 치열하게 펼쳐진 경북 의성 군위-의홍 부근 전투에서 산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유해는 2010년 6월 23일 경북 의성군 가음면 순호리 능선에서 발굴됐다. 당시 유해의 주인을 알려줄 이렇다 할 유품은 발견되지 않았다. 국군유해발굴감식단 중앙감식소는 DNA 검사를 거쳐 민 일병의 신원을 확인했고, 지난해 11월 민씨의 DNA와 다시 비교 검사해 최근 그를 민 일병의 유일한 혈육으로 확정했다. 아버지와 큰아버지(당시 경찰)를 전쟁터에서 잃은 민씨는 외가와 할아버지 집에서 살았지만 지독한 가난을 피할 수 없었다. 어머니(82)는 그가 초등학생 때 재가했다.

 민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2년이 지나 군경 유자녀로 학비를 면제받고서야 중학교에 입학했다. 고교에 다닐 때는 2년간 중앙일보 춘천 지국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신문을 배달했다. 고교 졸업 후 태권도 사범을 하다 1973년 강원은행에 입사한 그는 99년 소양로지점장을 끝으로 명예 퇴직했다.

 아비 없는 자식으로 평생 기를 못 펴고 살았다는 민씨는 “유골을 찾겠다는 평생의 소원이 이뤄져 이번 설부터는 떳떳이 아버님을 모실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2000년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이 시작되고 모두 6000여 구의 유해가 발굴됐으나 이 중 신원이 확인돼 유가족 품으로 돌아간 유해는 77구에 불과하다. 특히 2008년 이후 DNA 검사만으로 전사자 신원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아홉 번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