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영어토론의 달인’ 될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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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훈(오른쪽)·양우석군이 영어 토론을 마친 후 상대팀원들과 서로 부족했던 점을 지적하고 잘한 점은 칭찬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11일 오후 9시.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C어학원 강의실. 4명의 학생들이 토론 준비에 한창이다. ‘Bribery should be legalized(뇌물은 합법화돼야 한다)’를 주제로 찬반으로 나눠 2:2 토론이 진행됐다. 최근 인도에서 이슈화된 뇌물의 제공·수여에 관한 합법화 논쟁이 쟁점이다. 토론이 시작되자 학생들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상대팀의 주장을 즉석에서 정리하고, 반박논리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찬성팀에 속한 김동훈군(서울 구암중1)과 양우석(서울 광남중3)군은 상대팀원이 발표하는 중간중간 서로에게 “You can say~(~라고 말하면 되겠다)“ 라고 속삭이며 반박할 내용을 공유했다.

영어토론은 영어사용능력의 종합예술이라 불릴 정도로 말하기·듣기·쓰기·읽기 전 영역의 능력이 종합적으로 활용된다. 즉석에서 상대팀의 논리에 반박할 수 있는 순발력·논리력·표현력도 필요하다.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NEAT) 시행을 앞두고 영어 말하기·듣기·쓰기·읽기 4대 영역의 균형 있는 학습이 강조되면서 영어토론이 각광을 받고 있다. 영어교육 전문가들은 “기본 영어실력만 갖춰졌다면 친구들끼리 팀을 짜 어렵지 않게 영어토론을 시작할 수 있다”며 “자기주도적으로 영어를 공부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놀이로 시작해 주제선정?조사분석까지

 아직 영어로 말하는 게 익숙하지 않다면 놀이형식의 영어토론이 적합하다. 튼튼영어마스터클럽 김형천 책임연구원은 “영어로 말하는데 두려움을 느낀다면 토론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친구들과 자유롭게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부터 만들라”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학급 친구들끼리 서로를 인터뷰하거나 특정 주제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해 그 결과를 토의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추천했다. 예컨대, 패스트푸드를 주제로 선정했다면, ‘어떤 패스트푸드를 즐겨 먹는지’, ‘어떤 음료수를 가장 좋아하는지’ 처럼 쉽게 답할 수 있는 질문으로 설문지를 만든다. 이렇게 질문을 만들고 답하는 과정에서 말하기·듣기·읽기·쓰기영역을 골고루 학습할 수 있다. 이렇게 인터뷰와 설문조사결과를 발표하고 각자의 의견을 얘기하다 보면 자연스레 토론형식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영어토론의 첫 단계는 주제선정이다. 김연구원은 “처음엔 ‘체벌이 필요한가’ ‘교복을 입어야 하는가’라는 주제처럼 찬·반이 확실하고 팀원 모두가 한번쯤 관심을 가져 봤음직한 주제를 정하는 것이 좋다”고 제시했다. 찬·반이 확실히 갈릴 수 있어야 근거로 활용할 자료수집도 용이하다. 팀은 3:3 또는 4:4 구성이면 적당하다. 인원이 너무 많으면 토론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기 힘들다.

 2단계는 자료 준비다. 어떤 자료를 얼마만큼 준비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질의 정보가 풍부해야 내 입장을 대변하고 상대 입장을 반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문·잡지에 실린 기사는 주제와 관련된 객관적인 정보를 담고 있으면서 찬·반의 서로 다른 입장을 비교·대조해주기 때문에 각자의 입장을 정리하고 근거를 찾기에 좋다. 청담어학원 청담본원 박해동 원장은 “신문·잡지에 실린 기사에서 시작해 유엔 총회의 발표 자료나 모의 법정·국회에서 다뤘던 내용까지 자료조사 범위를 확대해보라”고 권했다.

 학급친구들끼리 팀을 짜 모의토론을 진행할 때 과도하게 형식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원서자료뿐 아니라 관련 다큐멘터리나 영화와 같은 영상물도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 박원장은 “주제와 관련된 드라마·영화 속 찬·반입장을 상징하는 등장인물 역할을 맡아 해당 장면을 재현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추천했다. 예컨대, 안락사를 주제로 모의토론을 벌인다면, 안락사를 다룬 드라마·영화 속 등장인물의 행동을 따라 해보는 식이다. 드라마·영화 속 등장인물의 기본대사에 팀 별로 조사한 내용을 추가하면 근거를 더 풍부히 할 수 있다.

 영어토론을 진행한 후엔 반드시 토론 내용을 점검해본다. 토론 도중 부족했던 점을 서로 지적해주고 잘한 점은 칭찬한다. 김군은 “이 시간이 토론실력향상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토론이 끝난 뒤 상대방 팀의 준비자료를 함께 검토해보고, 주장의 근거를 어떻게 찾았는지를 점검해보는 거죠. 그러면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란 생각이 들면서 사고의 범위도 넓힐 수 있죠.”
 
훌륭한 토론, 논리적·비판적 사고능력 배양이 우선

 영어토론 전문가들은 ‘영어사용능력이 뛰어난 학생들도 영어토론은 어려워한다”며 “논리적·비판적 사고능력이 영어실력보다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우군 역시 “토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산발적으로 얻은 정보들을 일관된 논리적 흐름으로 재구성해내는 것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박원장은 “토론의 기본은 폭넓은 독서”라며 “모국어로 쌓아 놓은 배경지식이 풍부해야 영어 토론도 쉬워진다”고 답했다. 또 “평소 영어원서를 읽을 때 내용을 이해하는 데만 그치지 말고 글의 흐름을 생각하며 ‘왜 이렇게 됐을까?’ ‘이 다음 문단은 어떤 내용일까’ ‘나라면 어떻게 썼을까’ 라고 스스로 묻고 답하는 것을 습관화시키라”고 조언했다.

 청중을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표현력도 중요하다. 영어토론 시작단계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모방이다. 유명 인물들의 연설을 꾸준히 따라 하다 보면 강약의 조절과 단어 선택, 표정·손동작 등 내용에 힘을 실어주는 연설법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 청담어학원 청담본원 토마스 강 부장은 “대다수의 토론 대회에서 태도 점수도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다”며 “평소 거울을 보면서 발표를 연습하거나 동영상으로 촬영해 본인의 말하기 습관·버릇을 고쳐가는 것이 좋다”고 충고했다.

<나해진 기자 vatang5@joongang.co.kr 사진="김경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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