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웬 똥바가지? … “정치인 정신차리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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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도망갈 틈 없이 뿌린 즉시 살충’‘찬물 세척에 표백 살균까지’‘살균 99.9%’.

 뭘 이렇게 사생결단하듯 박멸하고 씻어내야 할까. 점잖은 미술관에서 파리채·락스·살충제·세척제·끈끈이 따위를 투명 아크릴 박스 속에 곱게 모셨다. 윤동천(53·사진) 서울대 서양화과 교수의 설치작품 ‘의미 있는 오브제-정치가를 위한 도구들’ 연작이다. 그 옆엔 군모를 나뭇가지에 묶어 만든 똥바가지가 살포시 놓였다.

윤동천의 ‘정치가-공약’. 지름 2m짜리 대형 애드벌룬 세 개를 전시장 천장에 매달아 정치가들의 헛된 약속을 풍자했다

 서울 수송동 OCI미술관에서 15일까지 열리는 개인전 ‘탁류(Muddy Stream)’의 한 장면이다. 미술관 3개층 전관에 52점의 평면과 설치 작업을 내놓았다. 윤 교수에 따르면 정치인들은 귀를 막고(‘경청’),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발하고(‘공약’), 검은 안감 댄 버선처럼 겉과 속이 다르고(‘속’), 오리발을 내밀고(‘내밀다’), 철새떼(‘특질’)처럼 몰려다닌다. 애드벌룬을 매달고, 철선을 구부려 만든 오리발을 내건 ‘정치가’ 연작들이다.

 그래서 그는 이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할 파리채·총명탕·쥐덫·똥바가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대형 마트에서 일괄 구매한 한없이 평범한 물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포복절도할 ‘레디메이드’ 아트다.

 윤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가 너머에서 자동차 경적 소리, 호루라기 소리가 요란하다. 제주 강정마을에 와 있는데 한쪽에선 서둘러 공사를 진행하고 다른 쪽에선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단다. 그는 “내 작업의 모토는 지금, 여기, 우리에 대해 얘기하자는 것이다. 인권도 평등도 제자리걸음인 우리 사회에 대해, 우리 사회의 정치 수준에 대해 정공법으로 다루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진아 전남대 교수는 “그의 작업은 풍자적이고 냉소적인가 하면 실제로는 현재를 건드리고 변화시킴으로써 한결 나은 세상을 염원하는 이중의 의식을 드러낸다”고 평했다. 02-734-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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