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고호가 그림을 그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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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그림의 위작시비가 세계 일류 미술관 소장품에까지 번지고 있다. 작품의 진위를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도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도대체 고흐의 위작은 얼마나 많은지, 위작범은 누군가에 대해서도 의견이 모두 다르다.

미국의 저명 미술월간지 〈아트뉴스〉 8월호는 '소위 반 고흐 작품들'이란 제목의 특집을 마련, 위작시비를 조명했다.

우선 '오베르 정원' 사건이 꼽힌다. 1890년 7월에 자살하기 몇주전에 그린 이 작품은 1992년 파리에서 5천5백만프랑(약 84억원)에 은행가 장 베른느에게 팔렸다.

96년 베른느가 죽자 미망인은 작품을 경매에 내놨다. 이때 프랑스 언론이 위작문제를 제기했다.

스타일에 일관성이 없는데다 세잔느 위작으로 유명한 20세기 초의 화가·미술품 수집가 클로드-에밀 슈페넥커의 소유였다는 것이다.

세계의 저명한 고흐 전문가들이 '진품'임을 선언하고 나섰지만 소용없었다. 경매는 유찰됐다.

고흐의 대표작 '해바라기'도 문제다. 일본의 야스다 보험회사는 87년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이 작품을 3천9백90만달러(약 4백43억원)에 구입했다.

예술품 역사상 최고가였다. 그러나 97년 10월 영국의 BBC는 특집을 통해 "야스다 해바라기가 스타일상의 문제 등 가짜라는 증거가 압도적으로 많다"라고 방송했다.

그러나 야스다 컬렉션을 지난 봄에 보고 온 파일센펠트는 "반 고흐의 해바라기 5점 중에서 야스다 것이 제일 못하다. 하지만 진품임에는 틀림없다"고 말하고 있다. 아마추어들이 그림을 수리하느라 덧칠을 해서 생긴 오해라는 것이다.

96년에 고흐 작품중 2천1백25점의 목록을 작성한 잰 헐스커는 목록 중 45점 이상에 위작혐의를 두고 있다.

그는 "고흐가 오베르에 머문 시기는 70일밖에 안되는데 당시의 작품이 80점을 훨씬 넘는다. 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썼다. 그는 각국 미술관에 있는 고흐의 위작을 1백점으로 추정한다.

위작문제 전문가 중에는 전 프랑스 국립박물관장의 아들인 베노이트 랜대가 있다. 그는 파리 오르세 미술관의 '의사 가셰의 초상',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초상화 '마담 지누'가 가짜라는 책을 출간했다.

초상화의 원본은 오르세에, 복사화는 메트로폴리탄에 있다. 고흐의 편지에 복사화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게 랜대의 주장 근거. 반대로 메사추세츠 주립대학 교수였던 마크 로스킬은 "오르세 쪽이 가짜인 것 같다"고 했다.

헐스커는 당초 둘다 진품이라고 했었으나 지금은 랜대의 입장에 섰다. 미술관 측과 전문가 대다수는 양쪽 다 진품임을 주장하고 있다.

시비가 계속 번져나가자 미술관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은 작품 4개를 전시장에서 치우고 소장품 전부를 X선으로 검사했다. 비엔나의 벨베데르 미술관은 집중분석 끝에 64년에 구입한 고흐의 초상화가 가짜라고 선언했다.

고흐의 작품은 계속 발견되고 있다. "죽은 고흐가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고흐는 큐레이터의 악몽이다"라는 말이 생길 정도다.

오르세 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 안느 디스텔은 "가짜라고 말하기는 쉽다. 어려운 것은 진품이라고 판정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돈을 노린 의도적인 가짜라기 보다 다른 사람의 그림을 실수로 고흐 것으로 추정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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