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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정당 공천권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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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정정목
청주대 교수·행정학

미국의 대선이 시작됐다. 야당인 공화당 후보들은 지지를 얻기 위해 당원 10명의 작은 마을들까지 찾아가 선거운동을 벌인다. 우리나라보다 50여 배 넓은 면적을 가진 나라가 당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방식이다. 유권자들은 이 과정을 통해 후보들로부터 충분한 관심과 존중을 받는 가운데 완전한 투표권을 행사한다. 완전한 투표권이란 자기 당의 후보를 당원들이 직접 선출하고 본선을 거쳐 대통령을 선출한다는 뜻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유권자들은 지역구 국회의원조차 각 당이 정한 후보들 중에서만 선출할 수 있다. 선출권이 사실상 제한된 것이다. 각 당이 자당 후보를 중앙에서 먼저 공천하기 때문이다. 이 공천권을 두고 파벌이 생기고 당은 내부로부터 분열된다. 또한 공천을 돈으로 사고팔기도 한다.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지만 공천을 당이 주면 국회의원들이 국민만 바라볼 수 있겠는가.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인적 쇄신을 주장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방법은 옳지 않다. 원인을 고치려 하지 않고 증상만을 호도하는 미봉책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논의하고 있는 다선 의원 퇴진, 나이 제한, 5% 룰 등 인적 쇄신의 기준을 살펴보면 보다 선명해진다. 다선은 칭찬받을 일이지 쫓겨나야 할 이유는 아니다. 또 몇 살이 많은 나이인지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보다 더 황당한 기준은 5% 룰이다. 지역구의 정당 지지율보다 5% 이상 낮은 지지율을 보이는 현역 의원은 공천에서 제외한다는 것인데, 왜 4%는 합당한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렇듯 상식에서 벗어나거나 설명할 수 없는 기준을 제시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유권자가 해야 할 일을 여전히 당이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을 뽑는 것은 유권자의 의무이자 권리다. 유권자들이 온전하게 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분권체제로 전환하면 지역 당원들이 자신들의 후보를 선택하면서 자연스럽게 인적 쇄신도 이루어진다. 이 체제를 만드는 것이 비대위가 해야 할 일이다. 눈부시게 발달한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도 바람직한 시도가 될 수 있다. 이러한 혁신이 땅에 떨어진 정당에 대한, 정치인에 대한 유권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지방자치제의 운영 성과가 중앙정치 못지않게 실망스러운 원인도 공천권에 있 다. 공천권이 중앙당의 권력자와 국회의원, 그리고 지방의 선출직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종속관계를 맺어주는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다. 지방의 선출직 공직자들에게는 지역 발전에 매진하기보다 이러한 관계를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한 업무가 돼버린다. 이 관계를 끊는 것이 한나라당이 살아나고 다시 나라가 발전하는 길이다. 그리고 그 첫걸음이 공천권을 국민에게 되돌려주는 것이다.

정정목 청주대 교수·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