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 Fur... 모피를 재미나게 만들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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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호 28면

올겨울 최고 트렌드를 꼽는다면 ‘페이크 퍼(fake fur·가짜 모피)’다. 동물보호주의자인 스텔라 매카트니처럼 철학을 갖고 페이크 퍼를 만드는 디자이너가 진작 있었지만, 지금의 트렌드가 신념 때문만은 아니다. 색상이나 털 길이 조절이 자유로워 다채로운 스타일을 선보일 수 있고, 가격 부담이 적어 누구나 모피를 입을 수 있다는 장점 덕이다. 비록 페이크지만 모피가 대중화되면서 ‘비비드한 컬러’ ‘과감한 패턴’ ‘다양한 액세서리’ 등 모피 트렌드를 소개하는 기사도 부쩍 늘었다.
그런데 ‘모피 트렌드’라고 쓰는 이 말, 사실 모피는 트렌드랄 게 없었다.

브랜드 시그너처 <6> FENDI

모피로 만든 옷은 곰 한 마리를 어깨에 얹은 것처럼 무겁고 비대했다. 패션과는 거리가 있었다. 결을 따라 자르르 윤기가 흐르는 동물의 털은 부(富)를 과시하고 신분을 드러내는 상징에 가까웠다. 펜디는 이런 모피에 스타일을 입혀 패션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왔다. 오늘날 페이크 퍼에 이르기까지 모피 패션의 역사는 펜디에서 시작된 셈이다.
브랜드는 작은 모피 회사로 출발했다. 1925년 에두아르도 펜디와 아델 펜디 부부는 이탈리아 로마에 가죽과 모피 매장을 열었다. 1930~40년대 이들의 사업은 번창했고 이탈리아 전역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10대 때부터 가업에 뛰어든 다섯 딸들은 브랜드를 명품의 반열에 올렸다. 이들은 65년 파리에서 이름난 젊은 디자이너 카를 라거펠트를 영입했다.

샤넬이라는 거대한 이름에 가려 종종 간과되지만 펜디와 라거펠트의 만남은 패션사(史)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으로 꼽힌다. 이때 펜디의 상징인 ‘더블 F’ 로고가 탄생했고, 모피의 혁신이 시작됐다. 라거펠트와 다섯 자매가 ‘Fun Fur’라는 뜻을 염두에 두고 두 개의 F를 사용해 로고를 고안했다고 하니, ‘펜디=모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예나 지금이나 ‘겨울의 로망’이지만 60~70년대에는 꼭 그렇지도 않았다. 급진적인 사회 변화와 함께 모피는 부르주아지의 유물 취급을 받는 촌스러운 옷이 됐다. 몸에 딱 맞는 코트를 입은 젊은 여성과 거대한 모피코트를 입은 나이 든 여성이 신구(新舊) 시대의 상징으로 삽화에 그려지곤 했다.

이때 라거펠트는 모피로 실험을 거듭했다. 소재와 패턴, 마감, 색상 등에서 전에 없던 시도를 선보였다. 품질이 낮고 의류용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진 다람쥐·두더지·토끼털을 사용했다. 전통적인 고급 모피로 여겨진 여우·흰담비·밍크털은 새로운 가공법과 화려한 염색을 통해 패셔너블하게 재탄생시켰다. 펜디는 모피 의류를 가볍고 부드럽고 입기 편한 것으로 변신시켰다.

다른 이탈리아 디자이너들이 그렇듯, 문화를 사랑한 펜디가(家) 자매들은 공연예술에 수많은 의상을 제공했다. 역시 모피가 주를 이루는데 86년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선 소프라노 카바이반스카가 입은 핑크 퍼(fur) 망토는 펜디의 역사를 장식하는 ‘작품’이다. 마틴 스코세이지의 영화 ‘순수의 시대’에서는 미셸 파이퍼가 우아한 코트를 입고 등장했는데, 이 영화는 94년 아카데미 의상상을 수상했다. 앨런 파커의 ‘에비타’에서 마돈나가, 웬스 앤더슨의 ‘로열 테넌바움’에서 귀네스 팰트로가 입었던 퍼 코트도 펜디였다.

이후에도 펜디의 모피는 축적된 기술로 변신을 거듭했다. 가죽·캐시미어·실크 등 이질적인 소재와 믹스매치했고, 봄·여름 컬렉션에서 잠자리 날개처럼 얇은 시폰에 모피를 덧대기도 했다. 2008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는 이윽고 입이 떡 벌어질 모피가 등장했다. ‘순금 모피’였다. 라거펠트는 24K 순금을 고운 가루로 만들어 모피의 털에 달라붙게 했다. 코팅 방식이 아니라 직접 흡수시켜 색깔을 표현한 첨단 기술이었다. 럭셔리의 극치, 상상을 넘는 기술의 완성체는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이쯤 되면 다음엔 또 뭘 보여줄지 궁금해지는데, 답이 나와 있다.

“다음엔 투명한 모피를 보여주겠다.”
라거펠트가 순금 모피에 놀란 이들에게 남겼다는 더 깜짝 놀랄 예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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