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노벨문학상 파묵의 이름 세상에 알린 문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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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고요한 집 1·2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민음사
각 권 270쪽 안팎
각 권 1만2000원

소설을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로만 여기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야기를 실어나르는 데만 정신이 팔린 소설은 따분하다. 때론 전위적인 자의식이, 전복적인 문장이, 전향적인 형식이 소설에 필요하다. 그것은 이야기에만 머물던 소설을 예술의 정거장으로 데려다 줄 승차권이기도 하다.

 터키 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59)은 젊어서부터 그런 승차권을 여러 장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의 생애 두번째 소설 『고요한 집』(1983)은 그의 나이 서른한 살 때 발표됐다. 한 작가의 두 번째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묵직한 자의식과 파격적인 형식을 담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소설은 1984년 터키에서 마다라르 소설상을, 91년 프랑스에서 유럽발견상을 수상하면서 파묵의 이름을 세계로 전파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고요한 집』이 관여하는 이야기는 방대하다. 한 가족을 중심으로 정치·문화·사회 등 터키의 현대 100년사를 다루고 있다. 80년 9월 터키에서는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는데, 그 두 달 전인 7월이 시간적 배경이다.

 이스탄불 근교에 살고 있는 아흔 살 할머니 파트마의 집에 세 손주가 모인다. 역사학자인 첫째 파룩, 혁명주의자가 된 둘째 닐귄, 그리고 돈을 벌어 미국에 가고 싶어하는 막내 메틴이 할머니의 집에서 일주일간 머무는 이야기가 소설의 큰 줄기다. 또 하나의 인물, 난쟁이 레젭이 있다. 레젭은 파트마의 사별한 남편 셀라하틴이 하녀와의 관계를 통해 낳은 혼외 아들이다. 레젭은 평생 파트마의 곁에서 하인으로 살아간다.

 파묵은 이렇듯 계층적·세대적으로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켜 터키 현대사에 얽힌 복잡한 문제를 실타래처럼 풀어낸다. 공화주의·민족주의·공산주의 등 이념 문제는 물론, 종교 문제, 동·서양 갈등, 세대간 충돌 등 광범위한 이슈를 끌어안는다.

 이처럼 폭넓은 이야기는 독특한 형식에 실려 읽는 이의 미감(美感)을 자극한다. 파묵은 이 소설에서 다층적 서술 방식을 택했다. 각 장이 전환될 때마다 화자가 바뀌고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소설 속 이야기가 생생한 역사 속 증언처럼 읽히는 까닭이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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