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혈맹과 북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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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임대희
경북대 아시아연구소 소장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발표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 20일 곧바로 시진핑 국가부주석 등을 대동하고 북한대사관을 방문해 조문했다. 이 자리에서 후 주석은 “김정은 동지의 영도 아래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과 한반도의 장기적 평화와 안정 실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고 말했다. 원자바오 총리는 그 다음 날 중국 내 실세들을 대동하고 조문했다. 이로써 중국은 북한의 새 지도부에 대한 지지와 유대관계를 전 세계에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우리 정부는 중국의 쾌속 행보에 놀랐다. 대북 정책공조를 위해 이명박 대통령이 후진타오 주석과 전화통화를 시도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이번 일을 보면서 많은 국민은 중국의 북한 일변도 외교정책에 분노했으며 중국이 대한민국을 진정한 ‘전략적 동반자’로 대우하지 않는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21세기 태평양시대를 이끌어갈 양국 관계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분명 중국 지도부의 인식은 바뀔 필요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를 계기로 중국에 대한 우리의 자세도 자성해 봐야 한다. 다음에 소개하는 에피소드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은 중국과의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하고 있다.

 지난 추석에 북한 청진시장이 북어 4마리를 들고 베이징에 가서 현직에서 물러난 중국 고관을 찾은 일이 있었다. 청진시와 그 퇴임한 중국 고관의 관계는 시장이 바뀔 때마다 물려받아 오는 것이며, 명절마다 베이징을 찾아온다고 한다. 중국도 인정을 중요시하기에, 애틋한 정성이 효과를 발휘한다. 우리는 중국과 북한 사이를 ‘혈맹’이라는 표현으로 쉽게 모든 것을 정리해 버리려고 하는데, 그 바탕에는 지금도 계속되는 이 같은 인간적 교류가 깔려 있다.

 중국과 우리 지방자치단체 간의 교류 중엔 전라북도의 활동이 눈에 두드러진다. 행정단위의 교류가 확대돼 부문별 교류가 긴밀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그 지역에 한국 사람이 찾아가면 이러한 바탕이 있기에 호감을 갖고 사안을 처리해 주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경제적인 진출이 있기에 행정적인 교류가 촉진되고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타의 다른 지역은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는데, 이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이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갸륵한 정성이 필요하다.

 어느덧 한국의 무역량이 1조 달러에 이르는 시점에 이르렀다. 이제 바야흐로 세계 각국이 한국에 호감을 갖게 만드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 가운데에서도 중국과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다양한 차원의 관계에서 우호증진을 위한 따뜻한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하겠다. 서로가 상대방을 얕잡아보면 먼 훗날 더 힘들어질 수 있으므로, 조금 더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의 자세를 갖출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노력이 모여 양 국민이 마음속으로 서로를 존중할 때 비로소 한·중 관계는 진정한 전략적 동반자가 될 수 있다.

임대희 경북대 아시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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