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뒤 글로벌 톱5 … 정몽구 ‘2000 약속’ 지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8면

정몽구(왼쪽) 현대차그룹 회장이 2000년 “10년 뒤 세계 톱5에 오르겠다”고 공언한 지 10년 만인 2010년 현대차그룹은 세계 5위를 달성했다. SK는 2011년 반도체 업체 ‘하이닉스’ 인수에 성공하며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추게 됐다. 최태원(오른쪽 위) 회장은 지난달 직접 하이닉스 본사를 방문해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대한항공 조양호(오른쪽 아래) 회장이 지난 6월 A380의 첫 운항을 앞두고 기념 시험비행 행사에 직접 참석했다.

“명실상부한 ‘글로벌 톱5’로서의 안착이다. 양적인 면뿐 아니라 품질 측면에서도 글로벌 선진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2011년의 달력이 남아 있던 지난해 12월 29일 현대차그룹 관계자의 입에서 나온 얘기다. 현대차그룹이 이룬 숙원사업이 뭐냐는 질문에 대해서다. 현대차그룹은 2000년 9월 기아차를 인수하며 자동차 전문 그룹을 표방했다. 당시 정몽구 회장은 “10년 뒤 세계 5대 자동차 업체가 되겠다”고 선언했지만 믿는 이는 드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1999년 현대·기아차는 211만 대 판매로 글로벌 11위였고, 미국 시장점유율은 3%를 밑돌았다. 하지만 딱 10년 만인 2010년 현대·기아차는 574만 대를 팔아 포드를 밀어내고 세계 5위에 올랐다. 혼다, 크라이슬러 등 10년 전엔 넘보지도 못했던 회사들도 제쳤다. 그리고 2011년은 글로벌 톱4를 넘보는 톱5의 자리를 굳혔다. 2011년엔 러시아와 브라질 지역에까지 생산공장을 세워 전 세계적인 생산 네트워크를 완성했고, 미국·유럽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100만 대 이상을 판매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글로벌 톱5 안착에서 중요한 건 질적인 면에서의 성장”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현대차의 높은 품질이 전해졌고, 선진시장에는 에쿠스나 제네시스 같은 고급 차종까지 입성했다. 미국 판매 차량의 60%가 쏘나타급 이상이다. 더 이상 값싼 차가 아니라 중산층 이상 현지 소비자가 현대차의 주 구매층이다.

 그럼에도 현대차로서는 아쉬운 점이 있다. 현대차가 글로벌 톱5를 넘어 글로벌 톱3로 진입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노사관계 선진화’가 아직 정착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경기의 급변 가능성이 상존하는 상황에선 신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몇 년간 파업은 없었지만 여전히 선진 노사 시스템을 갖췄다고는 할 수 없다. 2012년 숙원사업은 바로 노사관계 선진화의 안착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SK그룹은 2011년 하이닉스란 ‘대어’를 낚았다. 최태원 회장은 12월 22일 하이닉스를 전격 방문해 “하이닉스를 반드시 성공시켜 새로운 성장 축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최 회장의 말은 절실함에서 나온 것이다. SK그룹은 최 회장 취임 이후 양적 성장을 거듭해 왔다. 그러나 이는 통신과 정유사업 등 내수에 기반한 성장이었던 만큼 확장성엔 한계가 있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수출이 주가 되는 반도체 업체 하이닉스 인수를 갈망했고, 이제 SK는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게 됐다. 실제로 SK는 선대 회장(고 최종현 회장) 시절인 1978년 선경반도체를 설립했었다. 하지만 2차 오일 쇼크 등의 외부 변수를 이기지 못하고 81년 접고 말았다. 하이닉스 인수는 그런 면에서 ‘유업’의 완성이란 의미도 있다. 하지만 SK가 수년째 공을 들인 글로벌 사업에선 재미를 못 봤다. 올해 내내 이어진 검찰 수사가 악재가 됐다. 특히 최근 구속된 최재원 부회장이 이 부분을 전담하고 있었다. 주로 외국 정부를 상대로 한 사업 수주건이 200억 달러 이상 걸려 있었지만 현재로선 성공 가능성이 크지 않은 것으로 SK 측은 내다보고 있다.

 대한항공은 2011년 두 가지 숙원사업을 한꺼번에 해소했다.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와 ‘나는 호텔’이라 불리는 A380 여객기 도입이다. 3수 끝에 성공한 평창 올림픽의 경우 조양호 회장은 첫 도전 때부터 유치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전 세계를 누볐고 마지막엔 직접 영어 프레젠테이션에 나서기도 했다. 2003년 도입계약을 맺을 당시 에어버스는 A380을 2007년에 양도해 주기로 했었다. 그러나 각종 사정 때문에 미루고 미뤄지다 8년 만에야 한국에 들어오게 됐다. 2011년 6월을 시작으로 모두 5대가 도입된 A380은 2014년까지 10대가 운항될 예정이다.

 한화그룹은 2005년 이후 숙원사업으로 신성장동력 개발을 내세우고 특히 태양광 사업에 주력했다. 2010년 중국의 한화 쏠라원 공장 인수 때까지만 해도 5년여에 걸친 숙원사업이 성공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011년 불어닥친 유럽발 경제위기의 그늘이 한화에도 짙게 드리웠다. 다행히 4년여간 투자해 온 ‘바이오 시밀러’ 부문에선 성과가 있었다. 류머티스 관절염 치료제를 개발해 현재 임상시험에 들어갔는데, 이미 미국 머크사가 기술력을 인정해 7억 달러의 계약이 성사됐다.

 현대그룹은 어려운 2011년이었다. 수년 묵은 숙원 두 가지가 모두 이뤄지지 못했다. 첫 번째는 현대건설 인수, 두 번째는 금강산 관광 같은 대북사업 재개다. 현대건설은 우여곡절 끝에 현대차의 품에 안겼다. 다만 금강산 관광사업은 2012년 새로운 전기를 맞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면서 현정은 회장이 조문차 북한을 다녀온 뒤 대북사업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가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