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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393> 일본식 청주 ‘니혼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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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따뜻함이 그리워지는 요즘입니다.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국물 요리와 함께 따뜻하게 데워진 청주 한 잔은 겨울 찬바람의 매서움을 덜어줍니다. 우리가 흔히 ‘사케(酒)’라고 하는 일본식 청주(淸酒·쌀로 빚은 술)를 일본에서는 니혼슈(日本酒)라고 부릅니다. 긴 역사와 다양한 종류를 들어 청주의 종주국임을 자처하는 용어입니다. 사케는 술을 총칭하는 일본어로, 니혼슈보다 훨씬 광범위한 뜻으로 쓰입니다. 여러분을 니혼슈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박소영 기자

니혼슈의 종류는 2000여 개에 달한다. 일본 여행을 하다 보면 어김없이 그 지역만의 지자케(地酒)를 만날 수 있는 이유다. 음주애호가들이 꼽는 명주(銘酒)만도 160여 개에 달한다고 하니 그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니혼슈는 알코올 도수가 13~17도로 낮아 와인처럼 오래 대화하며 마시기에 적당하다. 와인처럼 산지와 제조법에 따른 브랜드가 많아 술 제조법이 술자리의 화제가 되곤 한다.

2008년 7월 일본 홋카이도 도야코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 만찬장에서 각국 정상과 배우자들이 건배하고 있다. 이들이 들고 있는 ‘와지마누리’라는 일본 전통 칠기 술잔에는 참석자 각자의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다. 이 잔은 일본을 대표하는 명주 ‘이소지만’으로 채워졌다. [일본 외무성 제공]

니혼슈는 도정률(벼의 낱알을 얼마나 깎아냈느냐)과 원재료 등으로 맛과 등급에 차이가 난다. 벼의 낱알을 얼마나 깎아냈느냐에 따라 ‘다이긴조(大吟)’와 ‘긴조(吟)’ ‘혼조조(本造)’ 세 가지로 나뉜다. 도정률이 높을수록 순도가 높은 고급술이 된다. 쌀의 표피 부위와 씨눈에는 비타민과 단백질, 지방질이 많다. 누룩과 곰팡이 증식에 꼭 필요한 물질이지만 너무 많으면 효모의 활동을 지나치게 활성화해 술맛을 떨어뜨린다. 니혼슈가 은은하고 깨끗한 향을 내려면 도정률이 높아야 좋다.

단, 술병에는 도정률이 아닌 정미율(쌀의 표피를 깎아내고 남은 비율)로 표시돼 있다.

정미율로 보자면 도정률과는 반대로 낮을수록 좋은 등급니다. 정미율이 50%인 다이긴조는 니혼슈 최고 등급이다. 다음 등급인 긴조는 정미율이 60%로 프리미엄급. 혼조조는 정미율이 70% 수준이다. 혼조조에도 끼지 못하는 술은 후쓰슈(普通酒)로 분류한다.

그 다음은 순수하게 쌀만을 원료로 사용한 ‘준마이(純米)’냐, 알코올을 첨가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오직 쌀과 누룩을 원재료로 한 준마이라는 타이틀이 붙어야 고급 술로 인정받을 수 있다. 따라서 일본인들은 정미율 50%에 쌀과 누룩을 발효시켜 만든 ‘준마이 다이긴조(純米大吟)’ 등급은 최고급 사케로 취급한다. 심지어 준마이다이긴조급 중에는 쌀알의 35%만으로 만드는 술도 있다. 쌀과 누룩 외에 소량(10~20%)의 알코올이 첨가되면 준마이라는 표현을 쓸 수 없어 다이긴조, 긴조, 혼조조로 불린다.

와인처럼 드라이한 맛, 단맛으로 구분

풀넷은 일본 전국의 유명 술집을 대상으로 1993년부터 매년 일본 전통주 랭킹을 발표하고 있다. 이 표에서는 가장 고급품으로 꼽히는 준마이다이긴조(純米大吟?)의 상위 10개 상품을 발췌 소개한다.

니혼슈 병 앞면엔 원재료와 알코올 도수, 제조일자와 용량 등이 적혀 있다. 뒷면엔 산도와 아미노산도, 향의 강도 등이 자세히 표시돼 있다. 니혼슈의 맛은 물의 농도가 결정짓는다. 니혼슈도 와인처럼 드라이한 맛과 단맛으로 구분한다. ‘+’ 가라구치(辛口)가 높을수록 맵고 드라이한 맛이 나고, ‘-’ 아마구치(甘口)가 높을수록 단맛이 난다. 미야기현의 ‘이치노쿠라 히메젠(一のひめぜん)은 -60의 달콤한 맛이 강해 식전주나 디저트용으로 인기다. 통상 +3에서 +5 사이의 술이 드라이한 맛이다. 산도는 니혼슈를 마셨을 때 느끼는 경쾌함을 나타내는데, 이 또한 가라구치와 아마구치로 나뉜다.

담백한 요리에는 은은한 맛의 니혼슈가, 진한 맛이 나는 요리에는 향이 강한 술을 마시는 게 이상적이다. 회에는 깨끗하고 드라이한 맛의 다이긴조나 긴조, 준마이다이긴조, 준마이긴조 등이 어울린다. 조림이나 구이에는 준마이나 혼조조급을 추천한다. 기름기가 많은 참치 뱃살 회에는 알코올 17~18도의 니혼슈를 추천하기도 한다.

3월 대지진으로 양조장 115곳 피해 입어

니혼슈 업계는 근년 불황을 맞고 있다. 일본 국세청 조사결과에 따르면 니혼슈의 소비량은 1970년 153만2000kL에서 2009년 61만7000kL로 줄었다. 소비량이 절반 이하로 준 것이다. 젊은 세대의 니혼슈 소비가 급감한 탓이다. 청주를 제조하는 면허업장도 매년 줄었다. 1956년 4135곳에서 2009년엔 1906곳이 됐다. 니혼슈 제조 후계자도 점차 설 땅을 잃고 있다.

일부 제조업자 중에는 저알코올주·매실주·유자술 등 칵테일을 즐기는 젊은 세대를 겨냥한 상품으로 생산라인을 개조한 경우도 적지 않다.

올 3월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역시 니혼슈 업계를 강타했다.

니혼슈를 만드는 고급 주조용 쌀을 대량 생산해 온 동북지방이 대지진과 쓰나미로 초토화된 것이다. 동북지방의 유명 니혼슈 양조장은 어림잡아 230곳. 이 중 절반에 해당하는 115곳이 지진과 쓰나미로 피해를 보았다. 설상가상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근 지역의 토양오염이 우려되는 가운데, 후쿠시마에서 생산된 올해 햅쌀에서 방사성 물질 세슘이 검출돼 폐기 처분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 지역 제조업체들 사이에서는 “이대로 니혼슈를 빚어도 되느냐. 생산한들 소비자들이 외면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젊은층 외면 … 40년 새 소비 절반 줄어

일본 젊은이들이 니혼슈와 멀어지게 된 계기는 맥주와 칵테일, 추하이에 비해 고가라는 점. ‘니혼슈=아저씨’란 이미지의 영향이 크다. 니혼슈 업계와 이자카야(술집) 운영자들이 젊은 고객을 끌어모으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새로운 스타일의 니혼슈 전문점이다. 주로 전통 일식과 어울린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과감하게 양식과의 조화를 시도한 것이다. 도쿄 메구로의 ‘와슈(和酒)발 KIRAZ’는 니혼슈와 어울리는 스페인·이탈리아 요리를 내놓고 있다. 니혼슈에는 요리의 강한 냄새를 걷어내는 성분이 있는 만큼 새우갈릭오일찜처럼 기름기가 많은 요리나 초리소 같은 자극적인 요리에 어울린다. 카르파초 같은 섬세한 맛의 요리와 함께 마시면 요리의 풍미를 한층 끌어올리고 생굴이나 진한 크림치즈처럼 와인과 어울릴 법한 안주와도 안성맞춤이다. 니혼슈는 차갑게, 혹은 상온에서, 미지근하게, 뜨겁게 등 다양한 온도에서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양식 코스의 식간주로도 활용할 수 있다.

니혼슈를 조금씩, 저가에 맛볼 수 있는 가게도 늘고 있다. 신주쿠의 ‘니혼슈 스탠드 모토’에서는 작은 잔의 니혼슈를 300엔(약 4800원)에 제공하고 있다. 간편과 양식 요리와 함께 누구나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캐주얼한 분위기가 강점이다. 하마마쓰초의 ‘메이슈(名酒)센터’에서도 3종류의 니혼슈를 500엔에 맛볼 수 있는 시음세트를 판매하고 있다. 이들 니혼슈 전문점의 공통점은 고급 프리미엄 니혼슈 대신 소규모 주조에서 만든 저가 상품을 주로 취급하고 있다.

2008년 홋카이도 G8 회의 니혼슈 홍보 화제

주요8개국(G8)정상회의 같은 국제회의 만찬이 주최국의 전통 음식, 전통주로 꾸며진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간혹 그 지방의 특산품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대체로 프랑스 코스요리에 샴페인과 와인으로 치러지는 게 대부분이었다. 이런 외교 만찬장에 대변혁을 시도한 것이 2008년 홋카이도에서 열린 도야코 G8+G22 정상회의다. 시즈오카현을 대표하는 니혼슈 이소지만(磯自慢)이 만찬장을 빛냈다. 당시 후쿠다 야스오 총리 부부는 와지마(輪島)칠을 한 일본 전통 술잔을 들고 건배를 제안해 화제가 됐다.

이는 일식을 앞세워 세계 시장을 개척한 일본 정부와 업계의 노력의 성과였다. 니혼슈의 내수시장이 점차 감소하는 데 비해 미국 등 해외시장은 급증하는 추세다. 전체 수출량의 40%를 차지했던 미국에서 최근엔 중국과 한국, 대만 등 아시아권으로 수출시장이 확대되는 추세다. 특히 한국의 경우 최근 들어 니혼슈의 수입량이 크게 늘고 있다. 2009년 한국에서 수입한 일본 술은 2000kL를 넘어 최근 5년간 8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외무성은 차제에 일선 외교관을 대상으로 니혼슈 교육을 실시하는 등 본격적인 홍보전략을 세웠다.

일본 외무성은 해외파견을 앞둔 신임 대사와 총영사를 대상으로 한 연수 프로그램에 니혼슈에 관한 강의를 포함시키고 있다.

일본 전국 유명 이자카야(居酒屋·주점)가 선정한 10대 니혼슈

순위│술 이름(지역)│브랜드│가격(알콜 도수)

1│고쿠류(黑龍·후쿠이현)│이시다야 720ml│1만500엔(15)

특징 1804년 창업. “좋은 술만 만들라”는 창업자의 유지를 받들어 쌀이 부족했던 전후엔 ‘야메 쌀’을 구입하면서까지 품질을 지켰다.저온 발효·숙성시킨 고급 술로, 깔끔한 맛이 특징. 일본 황실에도 납품되는 명주다. 술 이름은 구즈류(九頭)강의 물을 사용하면서 붙여짐. 고쿠류 중에서도 ‘이시다야(石田屋)’가 최고 브랜드로 꼽힌다.

2│주욘다이(十四代·야마가타현)│시치타레 니짓칸(七垂二十貫) 1800ml│1만500엔(16)

특징 4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도호쿠(東北)지방의 다카기(高木)주조에서 빚은 최고급품. 최근엔 가장 손에 넣기 힘든 브랜드로 꼽힌다. 14대 주인이 특허청에 ‘주산다이(十三代)’에서 ‘주로쿠다이(十六代)’까지 상표등록 출원. 보통 숫자는 허가가 나지 않는데,‘주욘다이’만 상표등록됐다.

3│닷사이(獺祭·야마구치현)│미가키 니와리삼부(磨き二割三部) 1800ml│1만엔(16)

특징 “취하기 위해, 팔기 위해 만든 술이 아니다. 음미하기 위한 술을 위하여”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유명하다. 술의 원료가 되는 쌀을 씻어 찌기까지의 모든 공정을 기계가 아닌 손으로 한다.

4│이소지만(磯自慢·시즈오카현)│준마이다이긴조(純米大吟)블루버틀 720ml│5292엔(16~17)

특징 1830년 창업의 명주조. 시즈오카현의 작은 주조에서 매년 소량 생산된다. 은은한 과실향과 깊은 뒷맛이 환상적인 일품. 2008년 홋카이도 도야코에서 열린 주요8개국(G8) 정상회의 만찬의 건배주로 더 유명해졌다.

5│구보타 만주(久保田萬·니가타현)│만주 1800ml│8169엔(15)

특징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일본 술 중 하나. 니가타의 아사히(朝日)주조가1985년 내놓은 구보타 시리즈가 센주(千)와 만주.부드러우면서도 풍요로운, 깔끔한 목넘김이 일품이다.

6│덴슈(田酒·아오모리현)│준마이다이긴조(純米大吟) 720ml│4000엔(16.5)

특징 논에서 나는 고급 쌀맛을 최대한 살렸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1974년에 전통적인 제조공법을 재현해 만든 일품. 깊은 맛과 품위 있는 향으로 ‘술의 예술품’으로도 불린다.

7│구도키조즈(くどき上手·야마가타현)│준마이다이긴조(純米大吟) 아이야마(愛山) 1800ml│4305엔(17)

특징 기품 있는 단맛이 남는다. ‘잘 꼬신다’는 뜻의 이름 때문에 ‘여성이 마시기 쉬운’ 혹은 ‘여성을 꼬시기 좋은 술’로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전국시대 그 어떤 적장도 이 술 한잔이면 포섭할 수 있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8│무라유(村祐·니가타현)│도키와(常盤)라벨 가메구치도리(口取り) 1800ml│3465엔(16)

특징 1947년 문을 연 무라유 주조가 2002년 새롭게 내놓은 고급 명주. 최고급 원료로 소량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쌀의 단맛을 그대로 병에 담은 듯 신선한 뒷맛이 일품이다.

9│아즈마이치(東一·사가현)│준마이다이긴조(純米大吟) 1800ml│5030엔(16)

특징 남국의 과일향을 연상시키는 달콤함과 독특한 산미, 옅은 떫은 맛이 조화를 이루는 일품이다. 사가 평야에서 술에 가장 적합한 쌀을 찾기 위해 1980년대부터 주조가 직접 쌀 재배에 나섰다.

10│구(空·아이치현)│호라이센(蓬?泉) 구 1800ml│7560엔(15.5)

특징 과일을 연상시키는 향기와 풍요로운 끝맛이 조화를 이루는 일품. 1년간의 숙성기간을 거쳐 병에 담긴다. 주로 냉장고에 넣어 차게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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