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이 커다란 영혼의 한 조각인지도 몰라요”Maybe all men got one big soul"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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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호 36면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던 올여름, 나는 지리산을 두 차례 다녀왔다. 혼자서, 그저 배낭에 책 두 권을 비닐로 휘감아 챙겨 넣고 산을 올랐다.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 나는 다른 등반객들이 서둘러 떠나버린 썰렁한 세석 대피소에서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를 읽으며, 새삼 이 소설의 주제가 증오와 저항이 아니라 사랑과 휴머니즘임을 발견했다.

박정태의 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 <3>『분노의 포도』와 존 스타인벡

“케이시 말처럼, 사람은 자기만의 영혼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 커다란 영혼의 한 조각인지도 몰라요. 그렇다면 문제될 게 없죠. 저는 어둠 속에서 어디나 있는 존재가 되니까. 저는 사방에 있을 거예요. 어머니가 어디를 보시든, 배고픈 사람들이 먹을 걸 달라고 싸움을 벌이는 곳마다 제가 있을 거예요. 경찰이 사람을 때리는 곳마다 제가 있을 거예요.”

1930년대 중반 미국 오클라호마 주에 심한 가뭄과 모래폭풍이 닥치자 농민들은 지주와 은행의 빚 독촉에 땅을 빼앗긴 채 캘리포니아를 향해 떠난다. 살인죄로 4년간 감옥살이를 한 장남 톰이 가석방돼 집으로 돌아오자 조드 일가도 유랑목사 짐 케이시와 함께 고난의 여행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주민들에게 캘리포니아는 약속의 땅이 아니었다. 착취는 심했고 배고픔은 여전했다. 조드 가족은 실업자 캠프에 수용되는데, 여기서 보안관들과 이주민들 간의 싸움이 벌어지고 케이시는 스스로 그 책임을 지고 체포된다. 이 사건이 계기가 돼 케이시는 노동자들의 파업 지도자가 되고, 톰이 케이시를 다시 만났을 때 케이시는 자경단원들의 몽둥이에 맞아 죽는다. 톰은 케이시를 죽인 자경단원을 살해하고 다시 쫓기는 신세가 된다. 톰은 도주하기에 앞서 어머니에게 굶주리고 핍박받는 사람들 편에서 투쟁하겠다고 약속한다.

『분노의 포도』는 미국이 대공황의 깊은 터널에서 헤매고 있던 1939년 출간됐다. 스타인벡은 농사를 지으며 성실하게 살아가던 조드 일가가 하루아침에 비참한 이주 노동자로 전락해 가는 과정을 통해 당시 미국이 처해 있던 참혹한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대기업들은 굶주림과 분노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들은 어쩌면 품삯으로 지불할 수도 있었을 돈을 독가스와 총을 사들이는 데, 공작원과 첩자를 고용하는 데,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사람들을 훈련하는 데 썼다. 고속도로에서 사람들은 개미처럼 움직이며 일자리와 먹을 것을 찾아다녔다.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톰을 비롯한 주인공들은 가난에 허덕이면서도 끝까지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희망의 가능성을 놓지 않는다. 특히 톰의 어머니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가족을 지켜나가는 모습은 부드러움과 강인함을 동시에 지닌 영원한 어머니 상을 보여준다. “어머니는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그것을 두 팔 벌려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이 가족의 요새며, 그 요새는 결코 점령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위대하면서도 하찮아 보이는 그 위치에서 어머니는 깨끗하고 차분한 아름다움과 위엄을 얻었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더욱 감동적인지 모른다. 겨울이 다가오던 어느날, 억수 같은 비가 난민들을 덮치고 톰의 여동생 로저샨은 아기를 사산하지만, 굶주려 죽어가는 낯선 노동자에게 자신의 젖을 물린다. 그러고는 이 한 문장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그녀의 입술이 한데 모이더니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해서 스타인벡은 한없는 절망 속에서도 따뜻한 인간애로 살아남는 인간의 질긴 생명력을 전해준다. 『분노의 포도』에는 당시 사회 분위기를 일화처럼 전해 주는 대목이 여럿 나오는데, 그중에서도 기계화돼 가는 농촌 풍경을 극적으로 드러낸 ‘말과 트랙터’ 부분이 백미다.

“말이 일을 마치고 헛간으로 들어갈 때는 아직 생기가 남아있게 마련이다. 말들이 숨 쉬는 소리가 들려오는 헛간에는 따스함이 있고, 말들은 짚자리 위를 서성이며 건초를 먹는다. 헛간에는 생명의 따스함과 열기와 냄새가 있다. 그러나 모터가 멈추면 트랙터는 트랙터가 되기 전의 쇳덩어리처럼 죽어버린다. 시체가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처럼 열기도 사라져버린다. 트랙터 창고의 함석 문이 닫히면 트랙터를 몰던 운전사는 차를 몰고 집으로 간다. 트랙터는 죽어 있으므로 너무 쉽고 효율적이다.”
스타인벡은 말년에 자기처럼 나이든 개 찰리를 데리고 4개월간 미국을 여행했다. 그 기록인 『찰리와 함께 한 여행』(1962)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인간은 영혼이 슬프면 병균에 의해 죽는 것보다 더 빨리, 훨씬 더 빨리 죽게 된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올해의 인물로 시위자(The Protester)를 선정했을 만큼 2011년은 분노가 들끓어 오른 한 해였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는 가진 자의 탐욕을 향한 못 가진 자의 성난 목소리였다. 내가 지리산에 오르던 날도 희망버스는 부산의 한진중공업을 향해 달렸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분노가 아니라 사랑이다. 영혼이 슬퍼져서는 안 된다.


박정태씨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서울경제신문, 한국일보 기자를 지냈다. 출판사 굿모닝북스 대표이며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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