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석의 마법...셰익스피어가 벌떡 일어나겠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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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호 16면

프로스페로의 마법이 잔잔한 바다에 격랑을 일으켰다면 오태석의 마법은 셰익스피어 희곡에 한국 연극의 역동성을 불어넣었다. 살풀이춤을 추듯 배우의 팔에 감겨 힘차게 휘날리는 흰 천의 물결은 휘몰아치는 태풍과 성난 파도, 난폭한 자연에 맥없이 휘둘리는 돛의 형상을 한꺼번에 응축한 움직이는 추상화였다. 타악기 리듬에 실린 힘있는 몸짓은 다이내믹한 우리 민족의 연극적 정서를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연극 ‘템페스트’, 12월 25일까지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연극 ‘템페스트’가 대극장의 스케일을 입었다. 한국의 대표적 연출가 오태석이 지난 8월 국내 최초로 영국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에 공식 초청받은 작품이다. 페스티벌 예술감독인 조너선 밀즈와 3년간의 소통 끝에 완성된 이 작품은 개막작으로 상연돼 주목받았고, 작품상인 헤럴드 에인절스 상을 수상했다. 최근 연극평론가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연극 베스트3’로 꼽히기도 했다. 소극장에서 높은 완성도로 평단의 호평을 받아온 실험정신 가득한 이 무대가 대극장 객석까지 사로잡을 수 있을까.

삼국유사의 가락국기 신화로 둔갑해 완전히 토착화된 셰익스피어는 서양의 드라마투르기를 한국적 연극기법으로 수용해 온 오태석과 극단 목화의 방법론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비약과 모순이 많은 셰익스피어 희곡에 생략, 비약, 의외성과 즉흥성으로 대변되는 오태석의 연출은 딱 맞는 옷이다. ‘언어의 연극’이라 불리는 셰익스피어와 아름다운 우리말을 찾아 연극 언어로 발전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는 오태석의 만남이기에 더욱 재미있는 궁합이다. 셰익스피어의 유장한 대사들은 우리 시조의 3.4조 4.4조 운율 속에 생략되고 응축되어 시적 정취를 더했다.

북과 징의 리듬과 판소리 창가의 가락을 타고 음악이 된 대사들은 익살스러운 몸짓과 어울려 우리만의 해학적인 색깔을 입었다.
이 무대의 백미는 역동적인 군무다. 부채춤, 탈춤, 사물놀이, 바라춤 등 우리 몸짓에 감각적인 조명을 비춘 생동하는 신체의 표현은 강렬한 시각적 효과를 일궈냈다. 옛것의 따분한 이미지를 속도감과 조형미로 극복한 ‘전통 재발견’의 교과서라 할 만했다. 거꾸로 세운 싸리비와 종이가면, 동물탈과 부채 정도가 무대장치와 소품의 전부였지만 빈틈은 느낄 수 없었다. 어떤 무대장치보다 강렬한 시각언어는 인간의 움직임이었다. 밀즈가 오태석에게 주문했다는 ‘소리로 그린 그림’은 그렇게 군무와 함께 완성됐다.

오태석 연출은 용서와 화해라는 주제를 통해 편가르기로 으르렁대는 한국 사회에 전하는 메시지까지 의도했다고 한다. 슬픔이나 원통의 감정까지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민족적 정서 도출에 치중한 탓일까. 희극이지만 감정의 굴곡과 극적 묘미가 실종된 것은 아쉬움이다. ‘템페스트’는 사랑과 원한, 분노와 용서라는 감정적 요소가 많이 내재된 극임에도 복수심에 불타 격랑을 일으켰다는 주인공에게 분노의 기색은 읽을 수 없고, 사랑에 빠졌다는 남녀의 애틋함도 이 무대의 관심 밖이었다. 배우들은 대체로 감정표현을 한 수 접고 한바탕 유쾌한 퍼포먼스를 펼칠 뿐.

“즐거우시라고 도술 좀 부려봤는데 어떠셨느냐, 이제 도술은 여러분 손으로 건너갔다”며 부채를 내미는 것은 극의 완성이 관객의 몫이라며 바통을 건네는 의미다. 대극장에서 관객의 개입이란 소극장이 주는 연대감과는 또 다른 감정이입의 장치를 필요로 한다. 몰입을 이끌어내는 드라마와 혼을 담은 연기의 에너지. 예술적 성취와 평단의 호평을 넘어 대극장 객석을 빈틈없이 메울 힘이다.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작품, ‘템페스트’ 이웃나라 왕 알론조의 음모로 무인도로 쫓겨난 밀라노의 영주 프로스페로가 마법을 부려 알론조 일행이 탄 배를 난파시키지만 알론조의 아들과 자신의 딸이 지극한 사랑에 빠지자 결국 모든 것을 용서하고 화해한다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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