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이창호 길러내 동양 고수들과 겨룰 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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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미국의 천재 기사가 바둑판 앞에서 이세돌 9단이나 구리 9단과 겨루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재미있다. 한국이나 중국 같은 프로기사 제도가 미국에서도 가능할까. 그게 이뤄진다면 바둑은 세계를 열광시킬 기반을 갖추게 된다. 그 꿈을 향해 첫발을 내디딘 미국바둑협회(AGA) 앤드루 오쿤(49·사진) 이사회 의장을 만났다. 그는 20일 한국기원 및 인터넷바둑사이트 타이젬(tygem)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미국 프로기사 제도 정착을 위한 지원을 약속받았다. 미국 협회 소속 프로기사는 한국의 오픈 기전 5개에 참가할 수 있고 한국에서 수련할 경우 수업료 지원을 받게 된다. 타이젬은 미국 프로 입단대회(내년 7월 )를 지원한다.

 -미국의 프로제도가 정착되려면 프로기사가 돈을 벌어 직업으로서 인정받아야 할 텐데 그게 가능한가.

 “당장은 힘들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젊은이들이 작가나 예술가의 길을 걷듯 바둑에 도전한다면 나는 그들에게 수입을 약속할 수 있다. 미국에선 엘리트 층이 바둑을 두는 데 아마추어 토너먼트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절감했고 그래서 프로시스템 도입에 나섰다.”

 -미국은 어린 수학 천재가 많다. 그들이 바둑을 배운다면 동양의 고수를 이길 천재 기사가 출현할 수 있지 않을까.

 “ 많은 플랜을 갖고 있다. 스폰서를 유치해 프로기사 리그를 열고 대국료를 지급하며 훈련을 하는 것은 물론, 라스베이거스에서 각국 정상급 기사들과 미국 프로 기사들의 토너먼트도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최종 목표는 이창호 같은 세계를 놀라게 할 고수를 길러내 동양의 고수들과 겨루는 것이다. 그게 프로기사라는 직업을 미국에 안착시키는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이다. ”

 - 일본에서 활동하는 마이클 레드먼드 9단이 최초의 미국 프로인가.

 “ 1970년대의 제임스 커윈 초단이 최초다. 레드먼드는 어렸을 때 몇 주만 바둑을 배우러 일본에 갔다가 아예 일본으로 이사했다(레드먼드는 서봉수 9단을 이긴 적이 있다). 아시아권 기사를 포함해 미국엔 현재 12명 정도의 프로가 있다.”

 -미국에 프로제도가 정착한다면 그건 바둑사를 바꾸는 놀라운 사건이고 중대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가슴은 설레지만 앞길은 험난해 보인다.

 “미국은 전략적 사고를 권장하고 좋아한다. 그 점에서 바둑은 적합하고 어린이 교육에도 유익하다. 베트남전 때 허시라는 리포터가 쓴 글이 있다. ‘우리는 체스를 두고 있었는데 그들은 바둑을 두고 있었다’(웃음). 미국은 아직 바둑을 잘 모른다. 창의적인 미국이 바둑 을 만난다면 흥미 로운 일이 벌어질 것이다.”

 ※뉴욕의 미국 바둑협회는 1937년 설립됐고 산하에 100여 개 클럽이 있다. 홈페이지 www.usgo.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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