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 번 방북 … 처음엔 동무, 지금은 할아버지로 불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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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제도 신부는 1960년부터 52년째 한국에 살고 있다. 유창한 한국어로 “나는 80% 한국인”이라며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얘기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미국 출신 함제도(78·Gerard E Hammond) 신부. 그는 북한 돕는 일에 관한 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이다.

 1933년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난 그는 60년 사제서품을 받던 해에 자청해서 한국에 왔다. 아시아 지역 선교를 목적으로 미국에서 결성된 메리놀 외방전교회(外邦傳敎會)의 선교사 자격으로다. 96년 대북 지원 단체인 유진벨 재단과 함께 북한을 다녀온 후 지금까지 50번 넘게 북한을 방문해 식량과 의약품 전달하는 일을 도왔다. 요즘 함 신부는 심사가 편치 않다. 김정일 사망으로 인해 대북 사업의 불확실성이 커져서다. 21일 그의 심정과 견해를 들었다.

 -김정일의 사망 소식을 듣고 어떤 느낌이 들었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다. 무척 놀랐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남북한 평화가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북한 사회는 어떻게 될 것 같나.

 “장례식 이후 벌어지는 일이 중요할 것 같다. 권력 승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본다. 하지만 앞으로 6개월 정도는 큰 변동은 없을 것 같다. 대북 지원 사업은 당분간 막힐 것이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은 여전히 고통 받고 있는 만큼 인도적 차원의 지원은 계속돼야 한다.”

 현재 함 신부의 북한 돕기는 크게 세 갈래로 이뤄지고 있다. 우선 메리놀 외방전교회 한국 지부장 자격으로다. 한국전쟁 이후 피폐해진 남한 사회를 도왔던 메리놀은 90년대 후반부터 북한 돕기에 주력하고 있다. 함 신부는 로마 교황청 산하의 구호 기구인 국제카리타스의 회원 기구인 한국카리타스에서 대북사업본부장 직도 맡고 있다. 김정일 사망으로 전망이 불투명해졌지만 최근 카리타스는 내년에 북한 지원을 크게 늘리기로 결정했다. 신부는 또 유진벨 재단의 이사이기도 하다.

 -내년에 카리타스가 대북 지원을 늘리기로 했는데.

 “2007년부터 한국카리타스가 북한 지원을 전담해 왔다. 하지만 내년에는 달라진다. 교황청에서 회의를 열어 좀 더 많은 나라가 북한 돕기에 나설 것이다.”

 -이런 방향 전환은 왜 하게 됐나.

 “북한을 돕는 그룹들 사이에 ‘지원 피로(donor fatigue)’가 발생하고 있다. 돕다가 지친 것이다. 그래서 자극이 좀 필요한 상황이다. 북한의 사정이 어렵기도 하다. 북한 정부가 주민을 먹여 살릴 수 없지 않나.”

 -지원된 물자는 필요한 곳에 제대로 전달되나.

 “현장에 접근해 전달 과정에 입회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 난 한민족에 대한 믿음이 있다. 남북한 주민의 99% 이상이 읽고 쓸 수 있는 똑똑한 민족이다. 필요한 것은 스스로 챙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전통적으로 아시아 국가는 계약보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되는 관계를 중시했다. 그런 걸 봐도 결국 잘 될 것으로 낙관한다.”

 -16년째 북한을 돕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달라진 게 있다면.

 “처음에는 날 동무라고 부르다가 동지→함 선생→함 신부로 호칭이 바뀌더라. 지금은 함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만큼 그들의 마음이 열린 것이다.”

 -대북 지원 사업에 어느 정도 힘을 쏟고 있나.

 “내 모든 시간과 힘을 쏟고 있다. 내년에 내 나이가 일흔아홉이다. 앞으로 살면 얼마나 살겠나. 죽기 전에 서둘러 더 돕고 싶다.”

 -북한을 돕는 데 열심인 이유는.

 “종교인으로서 어려운 사람들 돕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장면(1899~1966) 전 총리의 아들 장익(78) 주교와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다.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를 통해서다. 미국에서 산 기간의 두 배 가까운 세월을 한국에서 살았으니 난 80% 한국인이다. 충북 청주에 묘 자리도 봐뒀다. 북한은 메리놀이 해방 전 진출해 선교하던 곳이다. 남한에 애정을 쏟았던 만큼 남은 세월은 북한을 돕고 싶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메리놀 외방전교회(外邦傳敎會)=아시아 지역의 선교를 목적으로 1911년 미국에서 설립된 가톨릭 선교단체. 한국에는 1923년 평양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전쟁 직후 잿더미가 된 남한 사회에서 각종 구호활동을 펼쳤다. 한국에 파견된 선교사가 한때 90명이 넘은 적도 있었으나 지금은 17명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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