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 북 안정 강조 뒤엔 주도권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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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나흘째인 21일 북·중 접경지역인 신의주 압록강 둑에서 북한 군인들이 사격훈련을 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19일(한국시간). 김정일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조전을 보내 “김정은 동지의 영도하에 북한이 안정을 실현해야 한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미국은 한반도 안정을 최우선시한다”는 논평을 했다.

 20일. 후 주석은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 등과 함께 직접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을 찾아 조문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북한의 새 리더십이 북한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길 바란다”는 조의 성명을 발표했다.

 21일.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자칭린(賈慶林) 정치협상회의 주석 등과 주중 북한대사관을 찾아 조문했다. 이로써 중국 최고 수뇌부인 9명의 정치국 상무위원이 모두 조문을 마쳤다. 미 국무부는 하루 전 뉴욕 채널을 통해 북한 측과 실무 접촉을 했다고 공개했다….

 김정일 사망 이후 미국과 중국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포스트 김정일 시대의 북한을 겨냥한 개입정책에 나섰다. 다른 거라면 중국은 김정은 지지를 명확히 한 반면 미국은 거기까지는 가지 않은 점이다. 미국은 중국이 명시한 ‘김정은’ 대신 ‘새 지도자’라는 표현을 썼다.

 겉으로 표출된 미·중의 행보에는 “북한 체제의 안정과 현상 유지”라는 공통분모가 녹아 있다. “북한의 평화롭고 안정적인 전환(transition)을 원한다”는 클린턴 장관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북한 내부의 불안정은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고, 동북아 정세의 혼란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도, 미국도 원치 않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두 나라의 행보에는 동북아 영향력 확대라는 경쟁과 견제의 코드도 숨어 있다.

 중국으로선 김정일 사후의 북한을 계속 영향권에 두고 싶어 한다. 지난 2년 새 네 차례 중국을 찾은 김정일은 김정은 ‘후계 인증 절차’를 밟기도 했다. 중국이 주변 국가들 중 앞장서 “김정은 영도”를 인정하고, 공세적 조문 외교에 나서는 등 북한에 대한 후견인을 자임하고 나선 데는 다른 나라의 간섭을 배제하려는 의도도 있는 듯하다.

 흥미로운 건 미국의 행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김정일 사망 이후 한 번도 공식적인 발언을 하지 않았다. 그만큼 신중하다. 반면 한반도 주도권 경쟁에선 양보할 기색이 없는 눈치다. 한·미·일 공조의 끈을 탄탄하게 엮으며 북한을 향해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20일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고 유도한다. 백악관과 국무부는 연일 북한 내부 상황이 안정되는 대로 당초 계획했던 3차 북·미 대화가 가능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비핵화를 매개로 북한을 미국과의 양자대화 틀 속에 묶어 두면 미국의 영향력은 그만큼 커질 수 있다. 이미 외교의 중심축을 중동·유럽에서 아시아로 옮기겠다고 선언한 미국이다.

 북한에 대한 내부 정보가 부족한 미국은 중국의 대북 영향력도 활용하고 있다. 빅토리아 뉼런드 미 국무부 대변인은 21일 정례브리핑에서 “클린턴 장관이 20일 양제츠(楊潔?) 외교부장과의 전화통화에서 북한의 평온, 한반도 전체의 평온에 대한 관심을 명확히 했으며, 긴밀한 접촉을 유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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