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화신이 인간화할 때'…김정일 사진 모은 사이트 인기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김정일` 이름을 구글에서 영어로 검색하면 다음 세 가지가 나온다. `사망(dead)` `사망했다(died)` 그리고 `바라보다(looking at things)`란 검색어다.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이 무언가를 `바라 보는` 일련의 사진을 담은 블로그(http://kimjongillookingatthings.tumblr.com)가 해외 네티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 인터넷판이 20일 보도했다.

블로그 운영자는 포르투갈의 젊은이로 Y&ampamp;R이란 리스본 광고대행사에서 예술감독으로 일하는 호아오 로카(26)다. 로카는 이전까지 베일에 쌓인 북한 정권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지난해 `보스톤 글로브`의 `와이드샷(The Big Picture)` 섹션에서 “김정일, 바라보다”류의 사진들을 발견한 후 그에 대해 흥미를 느꼈다. 자신만의 버전을 만들기로 한 그는 조선중앙통신에서 `김정일이 무언가를 바라보는 사진`을 모두 모아 “○○○를 바라보다”란 캡션을 달아 블로그에 올렸다.

블로그엔 말 그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식석상에서 옥수수·스카프 등 뭔가 바라보는 사진들만 올라와있다. 이 블로그는 매월 50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지만 사망 직후 하루만에 조회수가 30만 건을 넘어섰다. 김정일은 사망했지만 그에겐 아직 375개의 업로드할 사진이 남아있어 사이트를 계속 운영할 계획이다.

로카는 한국에 가 본 적은 없다. 그러나 이 사진 모음은 김정일이 지배하는 이상하고 슬픈 왕국에 대해 심오한 철학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세계관이 얼마나 왜곡되었는지 여실히 볼 수 있다. 프로파간다란 것은 누군가를 인간 이상으로 위대해 보이게 하려고 만드는데 이 사진들은 정반대다. 북한 정권은 선전을 이용해 김정일이 일반 시민들과 호흡을 같이하고 있는 것처럼 조작한다. 그들의 앵글은 마치 악의 화신을 인간처럼 보이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로카는 김정일이 웃는 모습을 가장 좋아한다. “찰나라도 인간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 때 만큼은 사악한 모습이 사라지고 평범한 사람이 되어 무엇인가를 보면서 즐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찰나가 지나면 다시 악의 화신”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를 북한 당국자로 착각하고 이메일을 보내는 이들이 많다. "때로는 나를 김정일 본인으로 착각해 인민들에게 식량을 제공하고 자유를 주라고 촉구하기도 했다”고 그는 전했다.

김정일 사망 후 일부 모방 사이트들이 생겨났다. 이제는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인 김정은이 `바라보는` 사진들이다. 그는 “내 사이트에서 우스운 것은 늘 사악한 존재로 묘사되는 사람이 평범한 물체를 바라볼 때만큼은 평범한 사람일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원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