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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형 창업자 설땅 잃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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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일산 후곡마을의 번화한 상가 1층에 지난해 초 15평 규모의 문구점을 차린 최승기(35)씨는 한때 하루 50만원어치를 팔 정도로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

하지만 대형 할인점이 들어선 뒤부터 손님이 급감해 고전하다가 지난 5월 점포를 팔았다.

다시 샐러리맨이 된 崔씨는 "3분 간격으로 다니면서 일대 주민을 싣고 가는 셔틀버스에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면서 "결국 점포를 밑지고 처분했다" 고 말했다.

대기업이나 외국 자본의 진출로 유통.서비스업 점포가 대형화하면서 생계형 소자본 창업자들의 설 땅이 좁아지고 있다.

최근 신도시 번화가에 빈 점포가 늘어나고 있으며, 토종 가맹점(프랜차이즈)이 고전하면서 체인모집 광고를 찾아 보기 힘들게 됐다. 업계 추산으론 상반기 말 현재 프랜차이즈 수는 6백개로 지난해 말보다 50% 줄었다.

중소기업청 전대열 소기업과장은 "점포의 대형화는 자연스런 추세지만 창업비용 1억원 미만의 소자본 창업은 실직자나 서민층의 생계수단이므로 이를 위한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 고 지적했다.

◇ 실태〓1997년 3월부터 서울 동숭동 대학로에서 40평 면적의 레스토랑을 운영해 온 金모(40)씨는 하루 1백만원 안팎의 매상을 올렸다.

그런데 지난해 3월 외국계 B패밀리 레스토랑이 부근에 들어서면서 손님이 줄어 노래방을 하겠다는 사람에게 점포를 팔았다.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에서 98년 12월부터 10평짜리 생활용품점을 운영한 金모(45)씨도 하루 50만~80만원씩 팔았으나 지난 3월 대형 할인점이 동네에 들어서면서 결국 문을 닫았다.

주요 상권마다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이 운영하는 대형 체인 서비스 점포가 들어서면서 특히 기호식품(커피 전문점 등).음식점(레스토랑.피자 가게 등).도소매업(슈퍼.편의점 등)등이 타격을 받고 있다.

백화점.할인점이 진출한 지역의 재래시장도 30% 이상 매출이 줄어 상당수 점포주들이 전업.폐업할 준비를 하고 있다.

특히 경기도 성남시 분당 야탑동, 일산 주엽동처럼 대형 할인점이 들어서 경쟁을 벌이는 곳에서 소형 프랜차이즈 가맹점과 개인 점포가 고전하고 있다.

프랜차이즈경제인협회 노용운 사무국장은 "최근 생기는 대형 매장은 생활용품 구입뿐 아니라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을 모두 하는 원스톱 생활공간을 지향하기 때문에 반경 4㎞ 이내의 상권은 힘을 못쓰게 된다" 고 말했다.

최근에는 마르셰.TGI프라이데이.베니건스 등 외국계 페밀리 레스토랑 체인점이 늘면서 재래식 레스토랑이 특히 고전하고 있다고 창업 전문가들은 전했다. 스타벅스의 진출로 중소 커피 전문점 체인들도 긴장하고 있다.

◇ 소자본 창업의 대형화 움직임〓서울엔젤그룹.한국창업지원센터 등 창업 컨설팅 기관들은 소자본 점포의 대형화 쪽에서 사업 기회를 찾기 시작했다.

서울엔젤그룹은 국내 유망 프랜차이즈 업체들과 제휴해 '기업형 자영업' 아이템을 개발, 창업비 2억원 이상 규모의 점포 창업에 에인절 투자를 유치할 계획이다.

한국창업지원센터도 5억원 정도가 드는 음식점 체인 아이템을 개발해 창업비를 에인절 투자로 충당하고 투자자에게 월 또는 분기별로 이익을 배당하는 '주식회사형 가게 창업' 사업을 시작했다.

고종옥 대표는 "사업성이 없는 입지 선정, 불합리한 점포 임대차 계약 등으로 초보 창업자의 실패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소자본 창업의 대형화를 돕는 서비스가 필요하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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